법제화했지만 기업 냉담..."말보다 행동 보여달라", 신뢰의 위기 해소되지 않아
2021년 빅테크 규제 트라우마 잔존, 내수 위축으로 투자 심리 악화
2021년 빅테크 규제 트라우마 잔존, 내수 위축으로 투자 심리 악화

◇ 법제화된 민영경제 지원책, 과거와 다른 접근
시진핑 주석은 2024년 2월 민간기업 대표 좌담회에서 "민영기업 발전을 돕는 정책과 조치를 빈틈없이 시행하겠다"며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약속했다. 이후 2024년 8월 1일에 시행된 공정경쟁심사조례는 2016년부터 도입된 규정들을 발전시킨 것으로, 기업들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법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정책 발표를 넘어 법제화를 통한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중국 정부는 이미 이전부터 '민영경제 활성화 31조'와 '민영경제 활성화를 위한 25개 금융 지원 조치' 등의 지원책을 통해 민영경제 발전에 힘을 기울여 왔다는 연속성도 보여준다.
특히 2024년 11월 1일부터 시행된 외국인투자 네거티브 리스트에서 관리업종은 31개에서 29개로 줄어드는 등 외국인 투자 제한도 점진적으로 완화하며 개방 정책을 지속해 왔다.
◇ 알리바바 규제 후폭풍, 기업가 안전 불안감 지속
그러나 민간기업들이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2021년의 강도 높은 규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시 주석이 민영기업을 공개 비판하며 알리바바 등 빅테크 기업들에 대해 반독점 조치를 단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업가들의 신변 안전 문제다. 시진핑 집권 후 중국 기업가들이 추락, 교통사고, 의문사 등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특히 홍콩 기업가이자 관영 CCTV 유명 사회자 류팡페이(劉芳菲)의 남편인 류시융(劉希泳)이 중국 검찰의 고문을 5일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민심이 요동쳤다.
이에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 "기업가 신체 안전·재산 보호"를 천명했으나 기업가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오랜 과거이지만 1956년 마오쩌둥 시대의 백화제방(百花齊放) 운동 이래로 공산당의 무수한 사상검증에 단련되어 생존형 처세술과 독심술이 경지에 이른 엘리트들은 당국의 선전과 시진핑의 발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 중국 경제 침체 가속화, 소비·투자 동시 위축
민간기업의 신뢰 부족은 경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7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하여 전월 대비(2.0%) 소폭 개선되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크게 하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24년 7월 소비자신뢰지수가 86을 기록해 코로나19로 상하이 봉쇄가 가장 심각했던 2022년 11월의 역대 최저치(85.5)에 근접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민간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이들의 투자 위축은 심각한 문제다. 2024년 상반기 중국 사회소비품 소매판매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소비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가 확인된다.
특히 부동산 시장 붕괴가 민간 소비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투자 증가율은 2024년 1~8월 –10.2%, 착공면적 증가율은 –12.1%를 기록하여 2022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가계의 자산 가치 하락과 소비심리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
◇ 외국인투자 사상 첫 순유출, 글로벌 자본 이탈 가속
민영경제 정책의 실효성 의문은 외국인 투자 이탈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2022년 2분기부터 위축되기 시작하여 2023년 3분기 1998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순유출을 기록했다.
OECD에 따르면 글로벌 FDI 중 중국 비중은 2020년 24.3%로 정점을 찍은 후 급락하여 2023년 상반기 4.5%까지 하락했다. 이는 중국의 투자 매력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술 혁신 생태계의 붕괴다. 중국의 기술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글로벌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회사의 중국 투자가 급감했다. 2024년 모집된 금액은 57억 달러(약 7조9400억 원)로 전년의 1/4 수준에 불과해 기술 혁신 생태계 전반의 위축이 우려된다.
◇ 정책 일관성 확보가 관건
중국 정부는 민영경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24년 중국은 '바오우(保五·5% 성장률 유지)'를 사수하기 위해 지속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실시했으며, 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 왔지만,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장에서 민간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책 발표가 아니라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이다. 과거 "사회주의 이념 교육"을 강조하며 사업가들에게 "당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던 정책과 현재의 민영경제 지원 정책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약속이 진정성 있다면 말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요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민영경제 정책의 실패가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중국 경제 모델 자체의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국가 주도 경제와 민간 활력 사이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경고가 나온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기업의 불신이 고착화되면서 투자와 소비의 악순환이 깊어지고, 외국 자본의 이탈까지 가속화되고 있다. 법제화된 지원책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중국 경제는 장기 침체라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