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서 다극화 세계질서 구축 제안…우크라이나 전쟁 기계 연료공급 논란

◇ 중국, 미국 주도 질서 대안 제시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30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지역안보포럼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20여 명의 지도자들을 향해 "세계가 격변과 변화를 겪고 있다"며 "질서 있는 다극 세계"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자유무역 옹호와 "보다 정의롭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 구축을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미국 주도 시스템에 명백한 도전으로 해석된다. 그는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각국 고유한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 평화, 안정, 번영 촉진이라는 공동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이번 회의를 "퍼포먼스"라고 일축하며 인도와 중국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기계에 연료를 공급하는 악역"이라고 비판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정상회의 후 "소수 국가의 글로벌 거버넌스 독점은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2차대전 역사 재편으로 다극질서 정당성 확보
이번 정상회의는 일본의 2차대전 패배 80주년과 맞물려 중국이 역사를 재편하려는 시도와 연결된다. 베이징은 자신을 전후 국제질서 수호자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이란, 미얀마, 파키스탄 지도자들이 참석할 예정인 군사 퍼레이드에서 중국은 군사력을 과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베이징의 진짜 목표는 더 미묘하다고 분석한다.
시 주석은 2차대전에서 중국 역할을 확대하고 뒤이은 평화, 유엔 중심의 새로운 글로벌 질서 수립 과정에서 중국 기여를 부각시키려 한다. 또한 이 기념일을 통해 대만에 대한 중국 주권 주장과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대안 리더로서 위상을 강화하려고 한다.
차이나 미디어 프로젝트의 데이비드 반두르스키 소장은 "중국이 이 순간을 활용해 '우리는 다자주의 원조이며, 이제 다자주의를 새롭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하기에 좋은 글로벌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에게 중요한 첫 단계는 2차대전 연합군 승리에서 중국 역할에 대한 통상 서술을 재편하고 미국 기여를 축소하는 것이다. 중국은 '일본 침략에 맞선 저항 전쟁'을 1931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규정해 미국이 참전하기 10년 전부터 항쟁했다고 강조한다.
시 주석은 지난 5월 모스크바 방문 당시 "중국과 소련은 각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그 전쟁의 주요 무대였다"며 "두 나라는 일본 군국주의와 독일 나치즘에 맞선 저항의 중심축 역할을 하며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에 중추적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 대만 주권 주장 강화를 위한 역사적 근거 마련
베이징의 미국 주도 '규칙 기반 국제질서' 전환 노력 일환은 대만에 대한 주권 주장 강화를 겨냥한다. 시 주석의 2015년 2차대전 기념 연설에서는 대만을 언급하지 않았고, 당시 공산당 선전에서도 전시 국민당 정부 역할을 인정했다.
당시는 베이징과 국민당이 집권한 대만 정부 간 관계가 개선되던 시기였다. 국민당은 1949년 공산당과 내전에서 패배한 후 대만으로 피신했는데, 일본과 전쟁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전후 협상을 이끌었다.
올해는 공산당이 일본에 대한 저항 전쟁의 중심축이었다는 서술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2015년 이후 중국은 대만에 대해 더욱 공세적 태도를 보이며 광범위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특히 베이징이 위험한 분리주의자로 간주하는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이 지난해 당선된 후 더욱 강화됐다.
베이징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등 연합군의 전시 협정들에 대만 주권 주장 근거를 두고 있다. 이 협정들은 전쟁 후 일본으로부터 대만을 중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올해 처음으로 중국은 이러한 협정들을 유엔의 1971년 대만 국민당 정부 '승인 철회' 결정과 연결시켜 대만에 대한 주권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탄장대학교 양안관계센터의 장우웨 소장이 설명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카이난 가오와 마가렛 피어슨은 논문에서 "중국ㅇ의 주권 주장은 전후 글로벌 거버넌스 핵심 조직으로서 유엔에 대한 지지와 깊이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서방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은 연합국이 일본과 공식으로 전쟁을 끝낸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인용하는데, 이 조약은 일본이 대만 통제권을 누구에게 양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미해결로 남겨뒀다. 베이징은 이 조약을 거부한다.
중국사 전문가인 라나 미터 교수는 "중국의 엄청난 희생을 인정해야 하지만, 결국 미국과 일본 간 태평양 전쟁이 종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련도 일본과 불가침조약 때문에 대부분 방관자 입장에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궁극으로 이번 퍼레이드와 시 주석의 전쟁 서술 변경 노력은 주로 국내 청중과 글로벌 사우스 파트너들을 겨냥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반두르스키 소장은 "이는 국내에서 시진핑과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회 지도부가 강하고 국제적으로 존경받는다는 것을 당에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라시아그룹 중국 담당 아만다 시아오 소장은 "트럼프식 혼란을 활용해 국제적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베이징 시도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의 경우 중국이 대규모 군사력을 보여주고 침략자인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러시아와 같은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의 평화로운 이미지가 손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