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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1조 달러의 증발과 정체성 위기 믿음의 요새가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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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1조 달러의 증발과 정체성 위기 믿음의 요새가 무너지고 있다

금은 160억 달러 몰리는데 비트코인은 탈출 러시... 사방에서 무너지는 가치 서사
결제는 스테이블코인 투기는 예측 시장으로... 갈 곳 잃은 2100만 개의 신념
스마트폰에 표시된 비트코인 로고. 사진=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스마트폰에 표시된 비트코인 로고. 사진=AFP/연합뉴스

비트코인이 고점 대비 40% 이상 폭락하며 1조 달러의 시가총액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과거 가격 하락 시마다 나타났던 저점 매수세는 자취를 감췄고, 비트코인을 지탱하던 강력한 서사들(narratives)은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다. 기술적 결함이나 규제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비트코인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목적의 부재가 이번 위기의 핵심이다.

미 글로벌 경제 뉴스 전문 매체인 블룸버그가 2월 2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현재 가장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워싱턴의 규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고 월스트리트의 기관 채택도 최고조에 달했지만, 비트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얻은 순간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했다. 금은 거시적 위험 회피 수단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고, 결제 시장은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달러나 금 등 실제 자산에 가치를 연동시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디지털 자산)에, 투기적 재미는 예측 시장에 각각 자리를 내주는 형국이다.

디지털 금의 굴욕과 전통적 안전 자산으로의 자금 회귀


비트코인은 오랜 기간 디지털 금이라는 서사를 앞세워 투자자들을 유혹해 왔다. 하지만 최근 지정학적 불안과 달러 약세 국면에서 금과 은은 강력한 랠리를 펼친 반면,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가장 중요한 거시 경제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3개월 동안 미국 상장 금 관련 ETF(상장지수펀드, 인덱스 펀드의 분산 투자 장점과 주식의 실시간 거래 편의성을 결합한 금융 상품)에는 16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입된 반면,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는 약 3.3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이는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이나 혼돈에 대한 헤지 수단이 아닌 단순한 투기적 자산임을 증명하는 사례로 지목된다.

결제와 투기 시장에서 밀려난 비트코인의 쓸모에 대한 의문


비트코인의 강력한 전도사였던 트위터 공동 창업자이자 핀테크 기업인 블록의 최고경영자인 잭 도시마저 자신의 결제 앱에서 스테이블코인 지원을 시작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제 결제 분야의 중심은 달러 기반의 토큰 인프라로 이동했으며,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사라졌다. 또한 폴리마켓이나 칼시 같은 예측 시장이 도파민을 쫓는 투자자들의 새로운 놀이터로 부상하면서, 과거 밈코인이나 비트코인에 몰렸던 투기적 관심마저 분산되고 있다. 희소성이 가치의 원천이라던 비트코인의 코드는 무한한 대체재의 등장 앞에서 그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제도권 편입의 역설과 월스트리트 상품으로의 전락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은 오히려 그 독특한 신비로움을 박탈했다. 과거 자유주의적 탈출구로 여겨졌던 비트코인은 이제 월스트리트의 여타 금융 상품과 다를 바 없는 메뉴판의 한 줄이 되었다. 특히 현물 ETF를 통해 매수는 쉬워졌지만, 가격 결정권은 여전히 100배 레버리지가 횡행하는 역외 파생상품 시장에 묶여 있다. 지난 10월 폭락 사태에서 드러났듯, 자동 청산 엔진에 의한 연쇄 매도는 ETF 보유자들이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장을 초토화하는 파괴적인 변동성을 노출했다.

생존과 중심 사이에서 표류하는 비트코인의 불투명한 미래


물론 비트코인은 과거 마운트곡스 파산이나 중국의 채굴 금지 조치 같은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며 강한 회복력을 보여준 역사적 경험이 있다. 여전히 시장에서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디지털 자산이며, 제도적 장치 내에 완전히 안착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다. 그러나 생존 자체가 곧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금, 자유의 화폐, 기관의 예비 자산이라는 서사들이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다시금 자본과 신념을 끌어당길 수 있는 새로운 중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이번 위기의 종착점을 결정할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