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에너지 쇼크에 경유 품귀 현상 심화...수확기 농가 소득 직격탄
정부 긴급 행정명령 발동했지만 보조금 바닥...에너지 안보 위기 고조
정부 긴급 행정명령 발동했지만 보조금 바닥...에너지 안보 위기 고조
이미지 확대보기지난 22일(현지시각) 방콕포스트(Bangkok Post) 등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최근 격화된 중동 분쟁으로 국제 유가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면서 태국 내 디젤 수급이 사실상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연간 쌀 생산의 향방을 가르는 3월 말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두고 농기계와 운송 트럭이 멈춰 서면서 태국 경제의 근간인 농업과 물류 시스템이 동시에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멈춰 선 수확기, 발 동동 구르는 농민들…“기름 없이는 수확도 없다”
태국 최대 곡창지대인 피사눌록주 방라캄(Bang Rakam) 모델 지구의 논밭은 황금빛으로 물들었지만, 정작 들판을 누벼야 할 콤바인들은 기름이 없어 고철 신세가 됐다.
파야오 층클린 피사눌록주 농업회의소 위원은 지난 22일 방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도매업자가 10탱크씩 배달해주던 디젤 공급이 아예 끊겼다”라며 “현재 주유소에서 줄을 서서 7.5리터(2갤런)씩 배급받는 수준으로는 하루 100리터 이상을 소모하는 수확기를 도저히 가동할 수 없다”라고 현지의 처참한 상황을 전했다.
농가 소득의 핵심인 벼 건조 시설조차 가동이 중단되면서 애써 수확한 쌀이 창고에서 부패할 위험에 처했다.
솜콴 룽르앙 종자 센터 책임자는 “연료 부족으로 건조기가 멈추면 종자용 쌀의 품질이 급격히 저하된다”라며 “이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 농사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물류비 폭등과 신선식품 공급망 붕괴...임계점 다다른 물가 압력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번 연료난이 단순한 수급 불균형을 넘어 태국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공식 가격보다 약 16% 이상 높은 수치로, 물류 현장의 원가 부담을 극도로 높이고 있다.
이러한 유가 이중구조는 운송업계의 수익성을 급격히 악화시키고 있다. 키티삭 프라투앙차이시 동북부운송협회장은 “대형 트럭 한 대당 하루 약 2000바트(약 9만 2300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연료 배급제로 배송 지연이 상시화되면서 신선식품과 냉동 화물이 운송 도중 부패하는 사례가 속출해 물류업계 전체가 존립 위기에 처했다”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물류비용의 급격한 상승이 결국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도미노 현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식량 자원이 풍부한 태국에서 유통망 마비로 인한 식료품 가격 상승은 저소득층의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태국 정부 긴급권 발동…“보조금 정책 한계치 도달”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태국 정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각) 총리령을 발동해 에너지 시장 개입에 나섰다. 이번 명령은 1973년 제정된 ‘연료 부족 방지 및 완화법’에 근거한 강력한 조치다.
주요 골자는 모든 연료 거래업자가 생산량과 재고 데이터를 정부에 매일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특히 사재기를 막기 위해 3000리터 이상 대량 구매 고객에 대한 추적 관찰을 강화했다.
아누틴 찬비라쿨 총리 대행은 “현재의 품귀 현상은 실제 공급량 부족보다 공포에 기반한 사재기 탓이 크다”라고 진단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21일 기준 태국 에너지기금은 이미 120억 바트(약 5540억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며 디젤 가격 지지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너지 안보 위기, 수입 의존형 경제 구조의 한계 노출
태국의 이번 사태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직면한 ‘에너지 안보’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태국 정부는 400억 바트(약 1조 8400억 원) 규모의 차입을 통해 유가 방어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중동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재정적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경제 전문가들은 “에너지 가격 폭등이 농업과 물류라는 국가 기간산업을 마비시킬 때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해지는지 태국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라며 “에너지원 다변화와 전략 비축유 관리 등 근본적인 에너지 안보 체계 재정립이 시급하다”라고 제언했다.
태국의 디젤 부족 사태는 단순한 연료난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국가별 대응 역량이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