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사이클 아닌 설비 투자 사이클"... 과거와 결별한 'AI 슈퍼 사이클' 진입
데이터센터 비중 70% 돌파, HBM발 공급 잠식에 낸드플래시까지 '동반 품귀'
월가 "공급자 우위 시장 고착화… 기술 수율 확보한 '톱티어' 위주 실적 재편"
데이터센터 비중 70% 돌파, HBM발 공급 잠식에 낸드플래시까지 '동반 품귀'
월가 "공급자 우위 시장 고착화… 기술 수율 확보한 '톱티어' 위주 실적 재편"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경제 매체 인베스터스 비즈니스 데일리(IBD)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RBC 캐피털 마켓과 오펜하이머 등 주요 투자은행(IB)의 아시아 공급망 실사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AI가 삼킨 생산 라인… "2027년까지 수요가 공급 압도"
아시아 반도체 생산 현장을 점검한 스리니 파주리(Srini Pajjuri) RBC 캐피털 마켓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는 둔화 조짐이 전혀 없다"라며 "오히려 공급 부족으로 인해 시장의 가시성이 연말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전례 없는 가격 상승(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파주리 애널리스트는 D램 시장의 대격변을 예고했다. 그는 "올해 2분기 D램 계약 가격은 50% 이상 급등할 궤도에 올랐다"라며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최소한 2027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올해 전체 D램 시장에서 AI 서버를 포함한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상회할 전망이다.
릭 샤퍼(Rick Schafer) 오펜하이머 애널리스트 역시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들의 끝없는 수요가 2027년까지 공급량을 앞지를 것"이라며 "첨단 웨이퍼와 패키징, 메모리 전반에 걸친 병목 현상으로 제품 인도 기간(리드타임)이 늘어나고 있으며, 상승한 원가는 고스란히 고객사로 전가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HBM 병목'의 역설… 낸드플래시까지 번진 공급난
이번 공급 부족의 핵심 원인은 단순한 웨이퍼 부족이 아니다. 인공지능에 필수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을 위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일반 D램 생산 라인을 대거 전환하면서 발생한 '공급 잠식 효과'가 본질이다. HBM은 일반 D램보다 칩 크기가 크고 제조 공정이 복잡해 수율 확보가 어렵다. 이로 인해 전체 비트(Bit) 생산량이 줄어들며 범용 D램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 여파는 낸드플래시 시장까지 덮쳤다. 메모리 업계가 한정된 클린룸 공간과 설비 투자 예산을 D램과 HBM에 집중 배치하면서, 낸드플래시 공급 여건은 D램보다 더 빠듯해진 상태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구글의 '터보퀀트' 같은 AI 압축 기술조차 급증하는 데이터 연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메모리 부족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분석했다.
월가에서는 최근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U) 등 주요 종목의 주가 급락을 '일시적 조정'으로 평가한다. 마이크론 주가는 지난 30일 9.9% 하락한 321.80달러를 기록했으나, 전문가들은 이를 고점 인식에 따른 차익실현일 뿐 업황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본다. 실제로 RBC 캐피털 마켓은 엔비디아(NVDA), 마벨(MRVL), 암(ARM) 등과 함께 마이크론에 대해 '수익률 상회' 의견을 유지했다.
한국 반도체, "수율이 곧 권력이다"
이번 사이클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기회이자 가혹한 시험대다. 가격 결정권이 공급자로 넘어온 상황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할 핵심 열쇠는 '첨단 공정 수율'이다. 과거처럼 물량 공세로 점유율을 뺏는 시대는 저물었다. 얼마나 적은 자원으로 고부가가치 제품(HBM3E 등)을 결함 없이 뽑아내느냐가 기업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정부 역시 최근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과 금융 지원책을 내놓았으나,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력 및 용수 공급의 속도전'이다. AI 데이터센터 수요를 뒷받침할 메모리 생산 시설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인프라 구축 지연은 곧 글로벌 AI 경주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
투자자들은 향후 메모리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려면 다음 세 가지 지표를 주시해야 한다.
첫째, 빅테크의 CAPEX 증가율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고객사의 투자 속도 조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 HBM3E 양산 수율이다. 주요 기업들의 첨단 제품 공급 안정화 시점이 공급 주도권을 장악하는 필수 요건이다.
셋째, 재고 자산 회전율이다. 고객사들이 가격 상승을 우려해 선취매한 '가수요'의 존재를 확인해야 수요 변화를 실질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번 사이클의 승자는 '얼마나 많이 만드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고사양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가'에서 결정될 것이다. 기술 격차가 곧 실적 격차로 직결되는 유례없는 국면이 시작됐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