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국제에너지기구(IEA) 수장이 이란을 둘러싼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 속에서 각국이 연료를 비축하거나 수출을 제한할 경우 글로벌 시장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에 대해 “지금은 수출 금지나 제한 조치를 취할 최악의 시기”라며 “이같은 조치는 동맹국과 이웃 국가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5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비롤 사무총장은 특정 국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발언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최근 5주간 이어진 전쟁에 대응해 휘발유와 디젤, 항공유 수출을 금지한 주요 국가로 꼽힌다. 인도 역시 수출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대규모 정제시설을 보유한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수출 제한을 재고해야 한다”며 “이같은 조치가 계속될 경우 아시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역시 잠재적 수출 제한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약 5900원)를 넘어서고 캘리포니아주에서 항공유 부족 우려가 제기되면서 정제유 수출 제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주요 7개국(G7) 차원의 수출 제한 자제 합의에는 동참했지만,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원유 수출 금지만 배제했을 뿐 정제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 각국 ‘비축 경쟁’…시장 안정 노력 약화
비롤 사무총장은 일부 국가들이 이미 에너지 비축을 늘리며 시장 안정을 위한 국제 공조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위기에 대응해 총 4억배럴 규모의 원유와 연료를 비축유에서 방출했지만, 일부 국가는 오히려 재고를 추가로 쌓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동 방출 조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부 국가는 재고를 더 늘리고 있다”며 “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구성원임을 보여야 할 때”라고 했다.
◇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공급 충격 확대
이번 에너지 위기는 특히 아시아에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연료 배급과 근무시간 축소까지 시행되고 있다.
비롤 사무총장은 현재 유럽에서는 항공유나 디젤의 물리적 부족은 없지만, 중동 공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지 않으면 4월에는 3월보다 두 배 많은 원유와 정제 제품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평상시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하지만, 이란의 위협으로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또한 중동 지역 에너지 인프라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비롤 사무총장은 “현재까지 72개의 주요 에너지 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이 가운데 3분의 1은 심각하거나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 “에너지 체계 재편”…원전·전기차 확대 전망
비롤 사무총장은 이번 위기가 1970년대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에너지 구조를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위기는 원자력 발전 확대, 전기차 보급 증가,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촉진할 것”이라며 일부 국가에서는 석탄 사용도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응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우디는 원유 수출의 3분의 2 이상을 홍해 방향 송유관으로 우회시키며 해협 의존도를 낮췄다.
다만 해당 송유관이 공격을 받을 경우 “세계 경제에 매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비롤 사무총장은 영국의 경우 과거와 같은 북해 유전 붐을 재현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채산성이 있는 자원은 이미 대부분 개발됐다”며 “과거 영국은 전 세계 원유·가스의 약 5%를 생산했지만 현재는 0.7%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