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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술 패권 독점 막으려 中 자본 수용… '전략적 자율성' 확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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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술 패권 독점 막으려 中 자본 수용… '전략적 자율성' 확보 나섰다

유로화 설계자 크리스티앙 누아예 전 총재, '미국 기술 의존' 탈피 경고
AI·친환경 인프라 구축 위한 막대한 자금 부족… 아시아·中 저축 자본이 대안
프랑스 원전·AI 인재 앞세워 독자 생태계 구축… 파리-홍콩 잇는 금융 관문 육성
유럽연합(EU) 깃발.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연합(EU) 깃발. 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도, 유럽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의 생존과 자립을 위해 중국 자본과의 파트너십을 심화해야 한다는 유로화 설계자의 강력한 제언이 나왔다.

미국에만 기술과 자본을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유럽의 미래 경제 주권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다.

17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 창립 부총재이자 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인 크리스티앙 누아예(Christian Noyer)는 인터뷰를 통해 유럽이 진정한 경제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 자본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누아예 전 총재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파리를 유럽의 새로운 금융 관문으로 홍보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거쳐 홍콩을 방문하던 중 이같이 밝혔다. 그는 "유럽이 자체적인 AI 생태계와 첨단기술 인프라를 긴급히 개발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미국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기술 통제 리스크… "유럽 독자 생태계 구축해야"


유럽 정책 입안자들은 현재 AI, 친환경 에너지, 국방 등 전략적 미래 산업 부문에서 수천억 유로에 달하는 극심한 자금 부족 현상에 직면해 있다. 반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첨단 기술의 해외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술 자산의 미국 집중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수십 년간 유럽의 통화 및 금융 정책을 주도해 온 누아예 전 총재는 미국의 자의적인 기술 차단 리스크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그는 "워싱턴 당국이 언제 특정 핵심 품목의 수출을 제한하거나 특정 원천 기술에 대한 접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유럽이 자체적인 기술 방어벽을 세우지 못하면 미국의 정책 변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풍부한 유휴 저축 자본을 보유한 지역이 바로 아시아와 유럽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유럽 내부의 자본 동원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중국 등 아시아의 거대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 저가 수출 공습의 해결책, '관세 장벽' 아닌 '합작 투자'

이 같은 주장은 최근 중국산 저가 제품의 무차별적인 수출 공습이 유럽의 국내 제조 기반을 완전히 황폐화하고 있다는 유럽 정계의 거센 우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누아예 전 총재 역시 토종 생산자들이 처한 위기감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한 규제나 관세 장벽보다는 중국 자본을 유럽 현지 공장과 인프라에 묶어두는 '상호 호혜적 합작 투자(Joint Venture)'가 훨씬 더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미국 시장의 막힌 빗장을 뚫기 위해 유럽으로 극단적인 밀어내기 수출을 감행해 유럽 산업을 공멸하게 놔둘 수는 없다"며 "오히려 유럽 영토 내로 중국의 자본과 공장을 유치하는 합작 투자를 활성화하면, 유럽은 고용과 산업 기반을 유지하고 중국 기업들은 유럽 규제를 우회해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어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무기는 원전과 AI 인재… 파리와 홍콩 잇는 금융 허브 촉진


누아예 전 총재는 투자자들이 미국의 거대 빅테크 기업들로만 자금을 쏟아붓느라 유럽이 가진 강력한 독자적 잠재력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AI 역량과 숙련도를 갖춘 국가로 프랑스를 꼽았다.

프랑스는 풍부한 엔지니어링 인재와 세계적인 연구 센터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모를 감당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원자력 발전망을 완비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프랑스의 고성능 대형언어모델(LLM) 스타트업인 '미스트랄(Mistral) AI'가 그 강력한 증거다.

그는 아시아의 풍부한 자본과 유럽의 이러한 첨단 기술 기회를 연결하는 최적의 교량으로 홍콩을 지목했다. 파리를 브렉시트 이후 유럽 대륙으로 진입하는 환상적인 금융 관문으로 안착시키는 동시에, 홍콩과의 교차 투자를 촉진해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독자적인 금융 통로를 개척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유럽은 국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분산된 자본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감독 권한을 일원화하는 대대적인 자본시장 연합(CMU) 개혁을 추진 중이며, 주요 법안들이 연말 내에 최종 완료될 예정이다.

누아예 전 총재는 "유럽이 스스로 강해질 때야 비로소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와 대등한 입장에서 진정한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며 자립 능력을 갖춘 자율성 확보가 유럽 경제의 최우선 과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