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L·비메오·이벤트브라이트 품은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 기업
16억8000만달러 조달…낡은 디지털 브랜드 재정비 모델에 투자자 몰려
16억8000만달러 조달…낡은 디지털 브랜드 재정비 모델에 투자자 몰려
이미지 확대보기AOL·비메오·이벤트브라이트를 보유한 이탈리아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 기업 벤딩스푼스가 나스닥 상장 첫날 주가 급등에 성공했다.
성장세가 꺾였거나 재편이 필요한 디지털 서비스를 사들여 비용 구조와 제품 전략을 뜯어고치는 독특한 사업 모델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인공지능(AI)이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벤딩스푼스 상장은 유럽 소프트웨어 기업과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의 투자심리를 가늠하는 시험대로 받아들여졌다.
2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둔 벤딩스푼스 주가가 전날 나스닥 상장 첫날 39.7% 급등해 40.50달러(약 6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벤딩스푼스는 공모가를 주당 29달러(약 4만5000원)로 정했다. 이는 당초 제시한 희망 범위 26~28달러(약 4만~4만3000원)를 웃도는 수준이다. 회사는 이번 상장을 통해 16억8000만달러(약 2조6000억원)를 조달했다.
◇ 184억달러 평가에 나스닥 입성
이번 IPO에서 벤딩스푼스의 상장 기준 기업가치는 184억달러(약 28조5000억원)로 평가됐다.
상장 첫날 주가가 뛰면서 시장가치는 더 높아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벤딩스푼스 주식은 31달러에 거래를 시작해 40.50달러에 마감했고 이에 따른 시장가치는 257억달러(약 39조80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이는 올해 유럽 기업의 기술 IPO 가운데 손꼽히는 규모다. 미국 증시에서 소프트웨어 기업 상장이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벤딩스푼스의 강한 데뷔는 IPO 시장 회복 신호로 읽혔다.
◇ 낡은 인터넷 브랜드 사들여 재정비
벤딩스푼스의 핵심 전략은 어려움을 겪는 디지털 기업을 사들여 고치는 것이다.
이 업체는 비메오, AOL, 이벤트브라이트, 에버노트, 브라이트코브, 위트랜스퍼 등 한때 유명했지만 성장세가 둔화됐거나 사업 재편이 필요해진 인터넷·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AOL은 인터넷 초창기를 상징하는 브랜드다. 비메오는 동영상 플랫폼, 이벤트브라이트는 행사 티켓·이벤트 플랫폼, 에버노트는 메모 앱으로 각각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빅테크와 신생 플랫폼 경쟁 속에서 과거와 같은 성장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벤딩스푼스는 이런 기업을 사들인 뒤 비용 구조를 줄이고, 제품 개발과 운영 방식을 다시 설계한다. 벤딩스푼스는 자본에 대해 연 25% 이상 수익률을 내는 것을 목표로 제시해 왔다.
다만 이 방식은 논란도 낳았다. 벤딩스푼스가 인수한 기업에서는 대규모 인력 감축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루카 페라리 벤딩스푼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기업을 되살리기 위한 전환의 대가로 설명해 왔다.
◇ 사모펀드와 닮았지만 팔지 않는다
벤딩스푼스는 사모펀드와 닮은 점이 많다.
저평가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사들인 뒤 구조조정하고 수익성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모펀드는 보통 일정 기간 뒤 회사를 다시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지만 벤딩스푼스는 인수한 회사를 장기 보유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때문에 벤딩스푼스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서비스 지주회사에 가깝다. 여러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서비스를 한 포트폴리오에 넣고, 공통된 기술·운영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려 한다.
벤딩스푼스는 지난 2013년 창업했다. 이름은 영화 매트릭스의 ‘숟가락을 구부리는’ 장면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 당시의 작은 앱 개발사에서 출발해 10여년 만에 유럽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성장했다.
벤딩스푼스는 지금까지 50건의 인수를 해왔고, 추가로 1000개가량의 잠재 인수 대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은 앞으로도 인수 전략을 뒷받침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크다.
◇ 월간 이용자 5억명 확보
벤딩스푼스의 포트폴리오는 이미 상당한 이용자 규모를 갖췄다.
IPO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벤딩스푼스가 보유한 서비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5억명을 넘었다. 월간 유료 고객도 900만명을 웃돈다.
매출 성장도 빠르다. 2025년 매출은 13억1000만달러(약 2조300억원)로 2023년 3억8700만달러(약 5990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인수한 서비스들이 포트폴리오에 편입되면서 외형이 빠르게 커졌다.
다만 벤딩스푼스의 성장은 유기적 성장보다 인수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은 회사가 앞으로도 좋은 인수 대상을 계속 찾고, 통합 과정에서 실적 개선을 입증할 수 있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 공동창업자들 억만장자 반열
상장 흥행은 창업자들의 자산가치도 끌어올렸다.
이번 상장으로 페라리 CEO와 남아 있는 공동창업자들은 보유 지분 가치가 커지며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이는 유럽 기술 생태계에도 의미가 있다. 유럽은 미국에 비해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 배출이 적고, 성장기업 상당수가 미국 증시를 선택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벤딩스푼스 역시 본사는 밀라노에 있지만 상장은 나스닥을 택했다.
나스닥 상장은 더 깊은 자본시장과 높은 소프트웨어 기업 밸류에이션을 노린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유럽 유망 기업이 성장 단계에서 미국 시장에 의존한다는 현실도 보여준다.
◇ AI 시대 소프트웨어 IPO 시험대
FT에 따르면 이번 상장은 AI 시대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생성형 AI 확산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에 양면적 압력을 주고 있다. 한편으로 AI 기능을 붙이면 생산성과 고객가치를 높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AI가 기존 앱과 서비스의 기능을 대체하면서 전통 소프트웨어 기업의 사업 모델을 흔들 수 있다.
벤딩스푼스는 이 틈에서 자신을 ‘고장 난 디지털 사업을 되살리는 회사’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AI와 자동화, 제품 개선, 비용 효율화를 통해 오래된 인터넷 브랜드를 다시 수익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투자자들은 상장 첫날 이 논리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다만 벤딩스푼스가 인수한 브랜드들의 장기 성장성을 실제로 되살릴 수 있을지는 앞으로 실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 IPO 시장 회복 흐름도 반영
벤딩스푼스의 데뷔는 최근 미국 IPO 시장 회복 흐름과도 맞물린다.
올해 들어 스페이스X의 대형 상장 이후 미국 증시에는 다시 굵직한 신규 상장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날 전기자전거·스쿠터 공유 서비스 라임의 모회사 뉴트론홀딩스도 뉴욕 증시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뉴트론홀딩스는 16억달러(약 2조4800억원) 규모 상장에서 1억6700만달러(약 2586억원)를 조달했다. 기술기업들이 다시 공개시장에 문을 두드리는 분위기가 뚜렷해진 셈이다.
벤딩스푼스는 이 흐름 속에서도 독특한 사례다. 신생 AI 기업이나 고성장 클라우드 기업이 아니라, 오래된 디지털 브랜드를 사들여 다시 고치는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 기업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 낡은 브랜드의 부활인가, 구조조정 공장인가
벤딩스푼스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지지하는 쪽은 이 회사가 방치된 디지털 자산을 되살리는 능력을 입증했다는 입장이다. 에버노트나 비메오 같은 브랜드는 여전히 이용자와 인지도를 갖고 있지만 독립기업으로 성장 전략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벤딩스푼스는 이런 자산을 한데 모아 운영 효율과 제품 개선을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인수 뒤 대규모 감원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반복되면서 이 회사가 결국 비용 절감에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공장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부채와 인수 의존도가 커질 경우 경기 둔화기에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상장 첫날 40% 가까운 급등은 시장이 일단 벤딩스푼스의 성장 서사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공개기업으로서 분기 실적과 인수 성과를 꾸준히 증명해야 한다.
AOL과 에버노트, 비메오 같은 이름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익숙하다. 벤딩스푼스가 이 오래된 브랜드들을 실제 성장 사업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이번 IPO는 유럽 소프트웨어 기업의 새로운 성공 모델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구조조정 효과가 한계에 부딪히면 상장 첫날의 열기는 빠르게 식을 수 있다. 벤딩스푼스의 나스닥 데뷔는 낡은 인터넷 브랜드도 다시 자본시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첫 시험대가 됐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