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10년물 금리 한때 5.36%…기술산업 성장·재정적자가 차입 비용 상승 견인
"미국 경기침체에 따른 금리 하락은 더 위험"…유럽에 성장·재정개혁 촉구
"미국 경기침체에 따른 금리 하락은 더 위험"…유럽에 성장·재정개혁 촉구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국채금리 상승이 유럽 경제에 갈수록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의 기술산업 성장과 막대한 재정적자가 국채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성장세가 약하고 재정 문제가 심각한 유럽 국가들이 충격을 떠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미국의 높은 국채금리가 유럽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미국 금리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성장·재정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22일(현지시각) 낸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주장했다.
엘-에리언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이자 그라머시펀드매니지먼트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971년 존 코널리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이 유럽의 미국 환율정책에 대한 불만에 대응해 남긴 유명한 발언을 인용했다.
코널리 장관은 당시 달러화가 미국의 통화지만 그에 따른 문제는 다른 나라의 몫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엘-에리언은 55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상황이 미국의 통화가 아니라 국채금리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이 세계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면서 다른 나라들이 그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미 10년물 국채금리 3.96%에서 5.36%까지 급등
미국 국채금리는 최근 몇 달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약 2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이후 금리는 다소 내려왔지만 엘-에리언이 글을 작성한 시점에도 약 5.10%에 거래되고 있었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 역시 최근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엘-에리언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을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두 가지를 지목했다.
첫 번째는 첨단기술 산업의 성장에 힘입은 미국 민간 부문의 경제활동 확대다.
기술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면서 자금 수요가 늘고 채권 발행도 급증했다.
두 번째는 지속적인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다.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메우는 동시에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국채를 차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반면 과거 미국 채권을 안정적으로 매입했던 장기 투자자들의 자금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늘어나는 채권 공급을 충분한 수요가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국채금리에 상승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이 엘에리언의 진단이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불안도 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경유를 비롯한 에너지 제품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그 영향이 다른 상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높은 금리, 유럽 정부·기업·가계에 부담 전가
엘-에리언은 미국 국채시장의 규모와 국제적 영향력 때문에 미국에서 발생한 금리 충격이 자국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고 있으며 국제 투자자들의 자금이 집중되는 가장 깊고 발달한 금융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지위 덕분에 미국은 다른 나라의 저축과 투자자금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이점을 누리고 있다.
엘-에리언은 미국이 역동적인 민간 부문과 높은 성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유럽 자본을 흡수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높은 국채금리를 통해 금융 압력까지 다른 나라로 전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유럽에서도 정부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부담은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가계의 금융비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낮고 재정 상황도 취약하다는 점이다.
엘-에리언은 유럽의 구조적 약점이 미국에서 비롯된 금리 상승의 충격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유로존 핵심국인데 국채금리는 취약국 수준
엘-에리언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의 부정적인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를 꼽았다.
프랑스는 유로존의 핵심 경제국이지만 낮은 성장률과 정치적 양극화로 재정정책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대립이 심화하면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 합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 결과 프랑스 국채는 유로존 핵심국의 채권임에도 상대적으로 재정 취약성이 높은 주변국 채권과 비슷한 금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 엘에리언의 분석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국채금리 상승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 압력을 높이는 가운데 각국 국채금리도 상승하면서 기존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엘-에리언은 유럽에서 발생한 금융 불안이 다시 미국 시장으로 전파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영향이 제한적일 수는 있지만 미국과 유럽 금융시장 사이에서 충격이 서로 증폭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금리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더 큰 충격"
엘-에리언은 일부 유럽 정부가 미국 국채금리의 큰 폭 하락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러한 기대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국채금리가 하락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오히려 미국 국채금리가 의미 있게 하락한다면 미국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는 상황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면 세계 수요와 국제교역이 위축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관세와 무역 제한 조치가 등장할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엘-에리언은 이러한 상황이 현재의 높은 미국 국채금리보다 유럽 경제에 훨씬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유럽이 미국 경제의 약화에 따른 금리 하락을 문제 해결의 기회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최근 FT 인터뷰에서 제안한 것처럼 중앙은행의 지원에 의존하는 접근법도 경계했다.
유럽이 자체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미국의 금융 여건 변화나 중앙은행의 대응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U 자본시장 통합·규제 완화·재정개혁 촉구
엘-에리언은 유럽이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성장률과 생산성을 높이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복잡한 규제를 줄여 민간 부문의 성장 여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 차원의 자본시장 통합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회원국별로 분절된 자본시장을 하나의 통합된 시장으로 발전시켜 역내 자금조달과 투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기반시설을 현대화하고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생기업들이 사업 규모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엘-에리언은 이러한 조치가 유럽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유럽의 저축자금이 미국 기술기업 투자에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정 부문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 각국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예산 구조를 조정하면서 재정건전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금융시장에 의존하거나 인위적으로 낮은 세계 금리 환경을 활용하던 시대가 끝났다고 진단했다.
엘-에리언은 현재의 국채금리 충격이 미국에서 시작됐더라도 그에 대한 대응은 유럽 각국이 직접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이 자체적인 성장·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미국 국채시장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유럽의 문제가 될 것이며 그 비용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