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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개발자, '코스프레 퀸' 되다…'스파캣' 타샤의 인생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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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개발자, '코스프레 퀸' 되다…'스파캣' 타샤의 인생역정

2009년 설립된 스파이럴캣츠…15년 동안 활동 시작
코스프레 계약 600건 이상…게임 코스프레만 200건

서울 구로 넷마블 사옥 지타워에서 2024년 4월 27일 '제20회 넷마블 게임콘서트'가 열렸다. 연사로 나선 '타샤' 오고은 스파이럴캣츠 팀장.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구로 넷마블 사옥 지타워에서 2024년 4월 27일 '제20회 넷마블 게임콘서트'가 열렸다. 연사로 나선 '타샤' 오고은 스파이럴캣츠 팀장. 사진=이원용 기자
"게임 개발자로서 실패를 맛본 날, 집에 가는 길에 엉엉 울었다. 내가 목표로 했던 게임쇼, 게임사에 가지 못했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코스프레 모델로서 내가 원했던 행사에 그토록 선망했던 게임사의 파트너로 섰고, 그날의 감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국내 최고의 코스프레 팀으로 꼽히는 스파이럴 캣츠의 '타샤' 오고은 팀장이 넷마블 게임 콘서트에서 강연 중 한 말이다.
서울 구로 소재 넷마블 사옥 지타워(G-Tower)에선 27일 제20회 넷마블 게임 콘서트가 열렸다. 게임과 우리, 나아가 사회 전체의 관계를 탐구한다는 뜻의 '게임과 연결'을 주제로 보드게임 개발사 게리킴 게임즈의 김건희 대표, 오고은 팀장이 연사로 함께했다.

'게임 캐릭터, 현실에 소환되다'란 주제로 2부 강연을 맡은 오 팀장은 이 자리에서 '코스프레'의 역사와 현재, 코스프레 모델로서 스파이럴 캣츠를 세우기까지의 인생역정 등을 다뤘다.

코스프레의 기원으로는 1939년, 미국 뉴욕 월드콘에서 포레스트 J 에커먼(Forrest J Ackerman)이 당대 유행하던 펄프 픽션(싸구려 소설) 속 우주인의 모습을 입고 나타난 것을 들었다. 일본에선 1974년 도쿄에서 열린 'SF 대회', 한국에선 아마추어만화연합(ACA)이란 단체가 1992년 연 '가장 무도회'가 최초의 코스프레 무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고은 팀장은 "오랜 기간 코스프레 활동을 하며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당시 ACA에서 실제 코스프레를 했던 모델 분의 소식은 아직 알지 못한다"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업계의 최고 선배님인 만큼 모습을 드러내주셨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넷마블 게임 '모나크'의 마법병 '마가'로 분장한 '타샤' 오고은 팀장. 사진=타샤 공식 블로그이미지 확대보기
넷마블 게임 '모나크'의 마법병 '마가'로 분장한 '타샤' 오고은 팀장. 사진=타샤 공식 블로그

스파이럴캣츠는 2009년 활동을 개시, 15주년이 된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수 코스프레 팀이다. 국내 게이머들은 물론 해외에서도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코스프레 팀'으로 인정받고 있다.

오 팀장은 팀 설립 이전에도 1999년부터 학생 신분으로 아마추어 코스프레 활동을 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녀는 "소심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일 뿐이었던 내가 코스프레를 통해 남들 앞에 서고 스스로를 주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갔다"며 "코스프레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성격, 나아가 인생조차 바꿔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코스프레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지만, 처음부터 전업 코스프레 모델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 팀장은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게임 개발자의 꿈을 꿨다"며 "스파이럴캣츠의 '신메' 김태식 대표와는 선배 게임개발자로 첫 인연을 맺었고, 그에게 4개월 동안 개발을 배운 끝에 개발자로 첫 발을 딛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부푼 꿈을 안고 게임 개발에 입문한 그녀였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오 팀장은 "이름도 아무도 모를만한 중소 게임사에서 오브젝트, 텍스처 위주로 개발한 것이 커리어의 전부였다"며 "최악인 것은 그렇게 만든 오브젝트들이 게임사의 도산과 프로젝트 백지화로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넷마블 게임 콘서트 현장을 찾은 코스튬플레이어 '도레미(왼쪽)'와 '란하'.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넷마블 게임 콘서트 현장을 찾은 코스튬플레이어 '도레미(왼쪽)'와 '란하'. 사진=이원용 기자

개발자로서 실패를 경험한 오고은 팀장은 '타샤'란 활동명을 내세운 전업 코스프레 모델로 방향을 전환했다. 오 팀장은 "게임 개발자로서 스승이었던 신메 대표가 광고 모델 사업적인 부분을 맡고, 멤버로 영입한 '도레미' 이혜민이 함께하는 3인의 코스프레 팀으로 조촐하게 시작했다"고 밝혔다.

코스프레가 상업적으로 효과가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스파이럴 캣츠는 오랜 기간 아마추어 코스프레 활동을 해온 전문성으로 빠르게 업계인들의 인정을 받았다. 넷마블과 넥슨 등 게임사는 물론 AMD, 트위치 등 해외 게임 외 기업들도 스파이럴 캣츠를 홍보 앰버서더로 위촉했다.

오 팀장은 "타 업체와 체결한 코스프레 계약은 총 600여 건, 게임 관련 업무만 따져도 200건은 넘었다"며 "2013년에 넷마블의 신작 '모나크' 코스프레가 단기간에 100만 조회수를 기록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했다.

스파이럴 캣츠는 특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스타크래프트'나 '오버워치',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의 코스프레로 게이머들의 주목을 받았다.

오고은 팀장은 "개발자로 일할 때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사실 블리자드였다"며 "지스타 무대에서 블리자드 공식 코스프레 모델로 활동이 결정된 날, 동료들은 '게임 행사에 관계자로 간다'는 것에 기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개발자 시절의 꿈을 대신 이뤄낸 것 같아 뿌듯했다"고 강조했다.

블리자드의 게임 '디아블로 3' 속 캐릭터 '악마사냥꾼'으로 분장한 '타샤' 오고은 팀장. 사진=스파이럴캣츠이미지 확대보기
블리자드의 게임 '디아블로 3' 속 캐릭터 '악마사냥꾼'으로 분장한 '타샤' 오고은 팀장. 사진=스파이럴캣츠

최근의 코스프레 업계는 위기와 변화의 시기라고 오 팀장은 평했다. 그녀는 "꾸준히 잘 나갈것 같던 스파이럴캣츠도 코로나19가 덮친 후에는 계약이 연 10건 이하에 불과할 정도로 위기를 맞았다"며 "유튜브와 모바일 게임, OTT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시대가 오면서 사진 시대에 활약하던 전문 코스프레 모델들의 역할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언급했다.

스파이럴 캣츠 또한 유튜브와 틱톡, 라이브 방송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오 팀장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제2의 전성기로 이어지진 못할 수도 있다"면서도 "이러한 노력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제2의 스파이럴 캣츠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라 본다"고 각오를 다졌다.

강연 말미에 오 팀장은 '나 다움이 곧 아름다움'이란 키워드를 강조했다. 그녀는 "할머니가 되더라도 할머니에 어울리는 코스프레를 찾아 선보일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며 "스파이럴 캣츠를 비롯한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이 찾아가는 아름다움의 길을 응원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