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관례를 뛰어넘는 한화오션의 강한 공세가 회사 차원이 아닌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며, HD현대중공업을 조준하는 듯 보이지만 진짜 대상은 방위사업청 등 정부라는 것이다. 정부가 모순적인 태도를 견지한 것은 결국 HD현대중공업 등 경쟁사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추측이 갈등으로 드러났다는 게 방산업계의 시각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구승모 한화오션 사내 변호사는 “군사기밀을 불법 취득해 비인가 서버에 저장하는 심각한 보안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없었다”며 “이러한 불법행위가 반복되지 않고, 방위산업의 정의와 공정을 확보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을 타깃으로 하지만,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방산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게 더 큰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12~2015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KDDX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몰래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며, 이들은 지난해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의 KDDX 사업 입찰 가능 여부를 논의했고, 대표나 임원이 개입하는 등 청렴서약 위반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가를 제한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한화오션은 간담회 전인 지난 4일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정황을 수사하고 처벌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고발장을 전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제출했다.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일원으로 편입된 후부터 HD현대중공업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벌이는 데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의식한 듯 기자회견 내내 “기밀 유출 당사자이자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과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고위 임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지시나 관여 없이 수년간 군사기밀을 탈취해 회사 내부에 비밀 서버를 구축·운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방사청은 임원 개입과 관련해 조금 더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제재를 할 수 있다고 했고, 이러한 증거가 확인이 될 경우 추가적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보공개를 통해 확보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특별사법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조서에는 ‘군사비밀을 열람·촬영한 사실에 대해 상급자가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일부 피의자가 ‘맞다’고 대답한 대목이 담겼다. 또 결산 조서에는 '피의자의 부서장, 중역이 (이러한 행위를) 결제했다'고 적혀 있었다.
한편, 한화오션의 주장에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해왔던 HD현대중공업은 이날 반박문을 언론에 배포했다.
HD현대중공업은 “문제가 제기된 사안은 사법부의 판결과 방사청의 두 차례에 걸친 심도 있는 심의를 통해 종결됐다”며 “오늘 발표 내용은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이 법원에서 개인의 불법이라고 판결이 났고, 이를 근거로 방사청이 입찰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판단한 사안을 다시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적 절차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라고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 심지어 한화오션도 깨끗한 경쟁을 한 것은 아니라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방산업계는 한화오션의 공세가 정부에 대한 한화그룹의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회사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때, 독과점을 우려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에서 조건부 승인을 내주고, 방사청이 이번 판정을 내린 것이 한화로서는 기업활동에 정부가 과도한 제재를 취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중심에 선 정부가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위치를 잡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면서 “방산기업 간 갈등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직접 중재에 나서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