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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재계] ‘아메바 경영’ 버린 SK ‘ASBB’에 집중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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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재계] ‘아메바 경영’ 버린 SK ‘ASBB’에 집중 투자

‘확장’ 대신 ‘버림’ 기반 사업구조 대대적 개편
6월말 확대경영회의에서 그룹 차원 과제 공유
계열사 수 200개 육박하고 주력사 고령화 지속
경기 침체 상황 속 그룹 혁신역량도 하락 우려
미래 투자계획은 지속, 5년간 247조원 집행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사옥 전경.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사옥 전경. 사진=연합뉴스
SK그룹이 그동안 그룹의 강점으로 내세워 왔던 ‘아메바 경영’을 버리고 미래 신수종 사업에 집중하는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한다.

‘확장’을 유지하되, 자체적으로 방만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버림’을 기반으로 한 사업구조 영점사격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재조정하겠다는 것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다음 달 말 열리는 확대경영회의에서 계열사별로 진행 중인 리밸런싱 작업을 점검하고, 그룹 차원에서 남은 과제를 공유·논의할 예정이다.

확대경영회의는 8월 이천포럼, 10월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와 더불어 SK그룹 최고 경영진이 모여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중요 연례행사 중 하나다.

SK그룹은 구체적인 의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사업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리한다는 큰 그림은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SK그룹은 2023년 자산총액 327조2540억원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2년 연속 재계 2위 자리를 수성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SK그룹 계열사 수는 2023년 기준 198개사로, 1위 삼성(63개), 3위 현대차(60개), 4위 LG(63개)를 합친 것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골목상권 침해로 비판을 받는 카카오(15위, 14개)도 능가한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 분야에 SK가 참여하는 곳을 찾는 게 더 빠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어발’이다.

이는 SK그룹의 역동성을 상징해 온 ‘아메바 경영’의 결과물이다. 아메바 경영은 CEO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각자의 주특기를 살려가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기업경영 형태다. 연체동물처럼 필요에 따라 분리될 수도 있고 합쳐질 수도 있으며, 경영자의 리더십 역시 아메바처럼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분야의 주특기가 십분 발휘돼 결국 이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이들 기업만의 독특한 인프라(시스템)를 구축하게 된다.
SK그룹은 정유‧석유화학, 통신,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기둥이 되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서 포트폴리오에 속하는 각 계열사가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해 사업을 진행하고 기업을 설립하거나, 스타트업 또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워 온 SK는 최태원 회장이 아메바 경영을 도입한 이후 미래 신성장 분야에 중‧소규모 투자와 진출한 뒤 유의미한 성장을 이뤄낸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육성하는 전략을 유지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덩치가 커서 변화 대응이 느린 대기업의 약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SK의 아메바 경영이 일정 부문 성공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지금은 계열사 수 자체가 비대해지면서 전체 그룹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K그룹이 안고 있는 또 다른 고민은 주력 사업 부문의 고령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SK그룹은 모태 기업 SK네트웍스가 올해로 창립 71주년을 맞이했고, SK이노베이션은 62주년, SK텔레콤은 40주년, SK하이닉스는 41주년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추진한 지주회사인 SK(주)가 출범한 지도 33년이 됐다.

주력 사업의 고령화, 양적 측면에서의 계열사 수 증가는 그룹의 혁신역량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크다. 특히 최근의 글로벌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사업환경 불투명 상황에서 ‘서든데스(돌연사)’ 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SK그룹 내부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SK그룹 주요 계열사는 연초부터 다양한 TF를 발족해 경쟁력 강화 등을 고려한 포트폴리오 조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배터리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하기도 했다.

또한 SK그룹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취임 후 처음으로 SK수펙스추구협의회 논의 결과를 공개했다. 최 의장을 비롯한 SK 주요 계열사 CEO들이 지난달 23일 ‘4월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그간 경영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다고 반성하고, 사업 전반에 걸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리밸런싱’ 작업을 신속히 추진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박차를 가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다만 사업구조 개편이 투자계획의 위축으로 이어지진 않을 전망이다. SK그룹은 2022년 5월에 향후 5년간 반도체(Chip),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등 3대 핵심 성장동력(이하 BBC산업)에 24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분야별로 오는 2026년까지 △반도체와 소재 142조2000억원 △전기차배터리 등 그린 비즈니스 67조4000억원 △디지털 24조9000억원 △바이오 및 기타 12조7000억원이다. SK그룹은 최근 BBC에 인공지능(AI)을 추가해 이른바 'ASBB'(인공지능(AI), 반도체(Semiconductor),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로 미래 성장 산업을 재정의했다.

SK그룹 출신 고위 관계자는 “현재 진행하는 사업구조 개편은 선제적인 것으로, 미래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때마침 반도체 업황이 반등해 배터리 사업 둔화를 커버할 수 있는 여건이 된 만큼 지금을 변화의 적기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