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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인텔, 300억 유로 규모 독일 메가팹 건설 철회…유럽 첨단 반도체 자급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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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인텔, 300억 유로 규모 독일 메가팹 건설 철회…유럽 첨단 반도체 자급 실패

99억 유로 보조금에도 고객 확보 못해 백지화…TSMC 드레스덴 공장은 28나노 이상만 생산
2022년 3월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발표된 인텔의 메가팹 조감도. 사진=인텔이미지 확대보기
2022년 3월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발표된 인텔의 메가팹 조감도. 사진=인텔
인텔이 독일과 폴란드에서 추진하던 총 342억 유로(약 56조1200억 원) 규모 대형 반도체 공장 건설을 취소하면서 유럽의 첨단 반도체 자급 구상이 좌초했다.

IT 전문매체 EE타임스는 지난 13일(현지시각) 인텔의 유럽 투자 철회로 유럽이 7나노 이하 첨단 로직 반도체 생산능력 확보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대만 TSMC가 참여한 드레스덴 합작 공장 등 28나노 이상 성숙 공정 중심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수백억 달러 투자 부담에 계획 포기


인텔은 2022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300억 유로(약 49조5200억 원) 규모 메가팹(초대형 반도체 공장)과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 46억 달러(약 6조5600억 원) 규모 반도체 조립·테스트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칩스법 목표 달성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로 평가받았다.

독일 정부는 99억 유로(약 16조3400억 원), 폴란드 정부는 17억 유로(약 2조8000억 원) 보조금을 약속했다. EU 집행위원회도 이를 승인했다. 인텔은 "옹스트롬 시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최신 웨이퍼를 생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재정 악화로 작년 말 계획을 중단한 인텔은 지난 7월 립부 탄 신임 최고경영자(CEO)를 통해 공식 취소를 발표했다. 충분한 고객을 확보하지 못했고, 수익성이 불투명한 생산능력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에서다.

TSMC 합작 드레스덴 공장은 정상 추진


인텔의 철수에도 유럽 반도체 프로젝트가 모두 중단된 것은 아니다. TSMC와 보쉬,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 NXP 반도체가 세운 유럽반도체제조회사(ESMC)가 드레스덴에 짓고 있는 공장이 대표적이다.

ESMC는 100억 유로(약 16조5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TSMC의 28/22나노 평면 CMOS 공정과 16/12나노 핀펫(FinFET) 공정 기술로 웨이퍼를 생산할 계획이다. 첨단 공정은 아니지만, 유럽 자동차와 산업 분야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ESMC 대변인은 EE타임스 인터뷰에서 "올해 봄 토목공사를 마쳤고, 여름에 기초 슬래브를 깔았으며, 이번 가을 첫 건물 층을 올리고 있다"며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공장은 약 2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수천 명의 협력업체 일자리를 만들 전망이다.

글로벌파운드리스도 드레스덴에서 유럽 최대 규모 반도체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옌스 드류스 글로벌파운드리스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정부업무 담당 이사는 EE타임스에 "인텔의 1.8나노 공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며 "현재 우리는 22나노 이상 필수 기술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산업·의료 기술 분야에서 앞으로 수년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레스덴 한 우편번호 안에는 글로벌파운드리스, X-Fab, ESMC 등 3곳의 파운드리와 보쉬, 인피니언 같은 종합 반도체 기업, 프라운호퍼 나노전자기술센터 같은 연구기관이 모여 있다. 드류스 이사는 "유럽에서 비교할 곳이 없다"고 강조했다.

7나노 이하 첨단 공정 역량 확보 난항


프랑크 뵈젠베르크 실리콘 작센 전무이사는 EE타임스에 "인텔 공장이 있었어도 2030년까지 준비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인텔의 부재가 유럽의 2030년까지 글로벌 생산 20% 달성 목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가까운 미래에 유럽 대륙에서 첨단 로직 반도체 경로를 갖지 못할 것"이라며 "유럽이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용 엔비디아 칩에 막대한 돈을 쏟고 있지만 이를 국내에서 만들 파운드리가 없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뵈젠베르크 전무이사는 또 "ESMC 공장 부지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넣을 수 없다"며 "7나노 이하에 꼭 필요한 대형 EUV 기계가 현재 계획된 구조에 맞지 않아 10나노 이하로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류스 이사는 EE타임스에 "혁신은 나노미터로만 재는 게 아니다"며 "유럽은 파괴적 혁신, 진입장벽 완화, 목표 지향 자주 생산이라는 세 가지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를 통해 유럽은 TSMC와 엔비디아가 이미 지배하는 시장을 쫓기보다 자체 규칙으로 경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뵈젠베르크 전무이사는 "거의 100억 유로를 한 기업 보조금으로 배정했다면 이는 전략 목표와 연결됐을 것"이라며 "전략 목표가 여전히 있다면 플랜B는 무엇인가"라는 정책 질문을 제기했다. 독일은 오는 10월 새로운 국가 반도체 전략을 내놓을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가 보조금을 '승인'한다는 것은 회원국이 통상 금지되는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으로, EU가 직접 돈을 주는 게 아니다. 따라서 인텔 철수로 독일 국가 예산이 남게 됐고, 다른 프로젝트가 이 돈을 받으려면 베를린이 새 패키지를 만들어 EU 집행위에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EU는 2030년까지 글로벌 칩 생산 비중을 두 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드류스 이사는 "유럽에는 ESMC,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기반이 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와 집중"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