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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메탈, 루마니아 9.9조 방산계약 재협상 압박…"협박에 굴복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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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메탈, 루마니아 9.9조 방산계약 재협상 압박…"협박에 굴복 안 한다"

SAFE 자금 계약 마감 5월 31일 코앞…현지 생산 40%→0% 축소 요구 논란
그리스 부패 스캔들·3700만 유로 벌금 전력…루마니아 "공동구매 전환" 카드
독일 방산기업 라인메탈의 전투차량. 라인메탈은 EU SAFE 자금으로 추진되는 루마니아 방산사업에서 계약 마감 2주를 앞두고 당초 합의한 현지 생산 40% 보장 조건을 사실상 0% 수준으로 축소하는 재협상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리스·남아공·인도 부패 스캔들과 3700만 유로 이상 벌금 이력까지 다시 소환되며 동유럽 방산주권 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이미지 확대보기
독일 방산기업 라인메탈의 전투차량. 라인메탈은 EU SAFE 자금으로 추진되는 루마니아 방산사업에서 계약 마감 2주를 앞두고 당초 합의한 현지 생산 40% 보장 조건을 사실상 0% 수준으로 축소하는 재협상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리스·남아공·인도 부패 스캔들과 3700만 유로 이상 벌금 이력까지 다시 소환되며 동유럽 방산주권 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독일 최대 방산기업 라인메탈(Rheinmetall)이 루마니아와 추진 중인 약 57억 유로(약 9조 9000억 원) 규모 방산사업에서 계약 서명을 불과 2주 앞두고 현지 생산 비율을 대폭 낮추라는 재협상 압박을 가해 루마니아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거 부패 스캔들 이력까지 다시 소환되며 동유럽 방산주권 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도 루마니아 방산시장을 공략 중인 한국 방산업계로서도 주목할 변수다.

루마니아 언론들이 15일(현지 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라인메탈은 EU 공동방산 프로그램 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자금으로 추진되는 대규모 방산 도입 사업에서 당초 합의한 현지 생산(localization) 조건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수준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계약 서명 마감은 2026년 5월 31일로, 불과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최소 40% 현지 생산"에서 "사실상 0%"로…최고안보회의까지 보고


쟁점의 핵심은 현지화 비율이다. 당초 라인메탈은 자사가 2024년 초 인수해 글로벌 생산망에 편입한 루마니아 현지 공장 오토메카니카 메디아슈(Automecanica Mediaș)에서 최소 40% 현지 생산을 보장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최근 라인메탈은 현지 생산 비율을 대폭 낮추거나 사실상 0% 수준까지 축소하라는 요구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EU와 루마니아 국가 자금을 거의 전액 독일 본국으로 이전하고 루마니아 방산산업 기반과 지역 경제는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루마니아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해당 사안은 이미 루마니아 최고국가안보회의(CSAT)와 니쿠쇼르 단(Nicușor Dan)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 루마니아 정부 소식통은 현지 언론에 "정부와 CSAT 모두 라인메탈의 결정에 만족하지 않으며 이런 협박(szantaż)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갈등에는 가격 급등 문제까지 겹쳐 있다. 루마니아 국방부는 올해 초 SAFE 자금 기반 21개 사업을 공개했으며, 이 가운데 보병전투차량(IFV/MLI) 298대(기존 29억8000만 유로), 원양초계함(OPV) 2척(7억 유로), 잠수부 지원함(5700만 유로)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협상 막판 방산업체들이 갑자기 가격을 3분의 1 수준으로 인상하는 요구를 제기했다. 루마니아 라두 미루터(Radu Miruță) 국방장관은 "계약 시간이 촉박해지자 업체들이 30%가 넘는 가격 인상안을 가져왔다"며 "우리는 돈이 있다는 이유로 팔을 뒤로 꺾인 채 인위적인 가격을 지불하며 협상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밝혔다. 결국 루마니아 정부는 1차 압박에는 부분 굴복했다. IFV 사업 가격은 29억8000만 유로에서 33억3700만 유로(약 12% 인상), 초계함은 20% 인상(8억3600만 유로), 잠수부 지원함은 무려 47% 인상(8400만 유로)된 금액으로 계약이 진행됐다.

그리스·인도·남아공 부패 전력…"644억 벌금 낸 회사가 다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이번 갈등을 계기로 라인메탈의 과거 부패 스캔들 이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라인메탈은 최근 15년간 그리스·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에서 대형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이력이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1998~2011년 자회사 라인메탈 디펜스 일렉트로닉스(RDE)가 그리스 관료들에게 방산 계약 대가로 뇌물을 공여한 사건이다. 중개인이던 전직 해군 장교 파파요티스 에프스타티우(Papajotis Efstatiu)가 브레멘 수사관들에게 RDE 경영진의 지시로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하면서 2013년 말 전모가 드러났다. 라인메탈은 초기 혐의를 부인하다가 본사 압수수색 이후 결국 유죄를 인정했으며, 3700만 유로(약 644억 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됐다. 현 라인메탈 CEO 아르민 파퍼거(Armin Papperger)는 당시 슈뒤도이체 차이퉁을 통해 "라인메탈에서 오류가 있었으며 그 책임을 진다"고 공개 사과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퍼거 CEO는 2025년 11월 부쿠레슈티를 방문해 일리에 볼로얀(Ilie Bolojan) 루마니아 총리를 만나 SAFE 프로그램 참여를 직접 홍보했었다.

루마니아 국방부는 공식 성명을 통해 회사명을 명시하지 않으면서도 "승인된 입찰 문서에 반하고 공공자금 효율 원칙에 위배되는 불리한 조건의 조달 계약에는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루마니아는 5월 31일 마감이 무산될 경우에 대비한 대안도 준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에 SAFE 자금을 다른 EU 회원국들과의 공동구매 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요청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대안 계약 체결 시한은 2026년 말까지 연장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EU 방산주권 논쟁의 모순"을 정면으로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EU는 방산 자립과 동유럽 방산기반 육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대형 방산기업들은 핵심 생산과 기술을 자국 중심으로 유지하려는 원심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루마니아를 주요 시장으로 공략 중인 한국 방산 입장에서는 현지 생산 참여와 기술이전 약속의 신뢰성이 수주 경쟁의 핵심 변수로 더욱 부각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