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장기계약 선점에 소비자용 D램 품귀 심화… 삼성·SK 주도권 속 완제품 원가 압박 직격탄
2028년까지 공급 절벽 장기화… 마이크론 역대급 실적 속 PC·스마트폰 가격 인상 도미노 예고
2028년까지 공급 절벽 장기화… 마이크론 역대급 실적 속 PC·스마트폰 가격 인상 도미노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글로벌 투자은행(IB) 제프리스 에퀴티 리서치는 지난 27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3분기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직전 분기 대비 최대 50%까지 폭등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극심한 수급 불균형이 전 세계 IT 산업을 강타하면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격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된 반면, 완제품 제조업체들은 전례 없는 원가 압박에 직면했다.
이번 가격 상승세는 오는 4분기에도 30~40% 추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고성장세를 지속하다가, 생산 설비 확충이 효과를 내는 2028년에 이르러서야 공급곡선 변화와 함께 점진적으로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 병목이 부른 연쇄 충격… 범용 D램까지 번진 공급 절벽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만 해도 이미 16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SCA를 체결했다. 이 장기 계약 비중은 조만간 전체 생산량의 70%까지 치솟을 것으로 추산된다. AI 인프라 구축은 대규모 선행 설비투자(upfront CAPEX)가 필수적인 구조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은 미리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멈추기 때문에 지금의 반도체 시장은 가격보다 '물량 확보'가 우선인 곳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 병목이 발생한다. 제품군별 가격 편차는 크지만, 이번 품귀 현상은 단순한 HBM 자체의 부족을 넘어선다. HBM 자체 부족이 아니라 이를 생산하기 위한 첨단 공정 전환과 패키징 캐파 부족이 병목으로 작용하면서, PC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범용 D램까지 공급이 도미노처럼 줄어드는 구조적 전환을 맞이했다.
삼성전자가 구형 저전력 D램(LPDDR4) 생산 비중을 줄이고 AI용 고성능 라인으로 공정을 빠르게 전환하면서 일반 소비자용 제품의 품귀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애플 등 글로벌 제조사들이 공급 붕괴 위험을 피하고자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기술 격차와 낮은 수율 탓에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SK하이닉스 290억 달러 美 상장… 동아시아 AI 자금 블랙홀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몸값을 올리는 강력한 지지대가 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28일 한국의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에 290억 달러(약 44조 6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상장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현지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AI 메모리 설비 투자를 극대화해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완전히 벌리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동아시아 AI 공급망 기업들에 글로벌 투자 자금이 쏠리는 현상도 뚜렷하다.
홍콩 증시는 올해 상반기에만 기업공개(IPO)와 지분 매각으로 5년 만에 최대치인 440억 달러(약 67조 6700억 원)를 끌어모았다.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이 50억 달러(약 7조 6900억 원)를 추가 조달했고, 대만 기술기업들도 주식예탁증서(GDR)와 전환사채로 역대 최대 규모인 480억 달러(약 73조 8200억 원)를 확보해 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반면 메모리 제조사들의 실적 잔치와 달리 완성품 제조업체와 소비자는 비용 부담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 24일 발표한 회계연도 3분기 실적에서 월가의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AI가 메모리를 먹어치우면서 전통적인 IT 소비 시장이 밀려나는 구조적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주가가 1000달러(약 153만 8000원)를 돌파하며 주식 분할론이 고개를 드는 마이크론의 독주 속에 완제품 기업들은 원가 상승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마트폰과 PC 소비자가격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지갑에서 나갈 IT 기기 구입 비용이 고스란히 반도체 기업의 이익으로 들어가는 구도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이면… 투자자가 감시해야 할 변수
반도체 업계와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과거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증권가에서는 과거 반도체 주기는 공급 과잉과 축소가 반복되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AI 데이터센터라는 거대한 고정 수요처가 공급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산 공정 전환의 기술적 한계와 청정실 확보 시차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는 중이라고 진단한다.
향후 반도체 시장과 증시 방향성을 가늠하려는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핵심 지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대형 제조사들의 전체 장기 공급 계약(LTA) 비중 추이와 빅테크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 집행 속도다. 이 두 축이 무너지지 않는 한 공급 우위 시장은 지속된다.
둘째는 HBM의 평균판매단가(ASP)와 비(非)HBM 제품군 ASP 간의 괴리 폭이다. 이 두 단가 사이의 격차가 좁혀지거나 비HBM 가격 상승세가 꺾이는 시점이 사실상 이번 반도체 사이클의 피크를 판단하는 핵심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번 메모리 단가 폭등은 거대 테크 기업들의 AI 영토 확장 전쟁이 유발한 공급 왜곡 현상이다. 단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급 호실적을 바탕으로 코스피 지수의 상승을 견인하며 가치평가 우위를 유지하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고물가 환경 속에서 스마트폰과 PC 등 후방 산업의 소비 둔화를 자극하는 부메랑이 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반도체 제조사의 마진 리드 타임이 정점에 달하는 시점과 중국 기업들의 대증설 물량이 풀리는 2028년 직전의 공급 곡선 변화를 감시하며 자산 배분 전략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