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프랑스 국채 55% 해외자본 의존…일본 자금 이탈 우려

글로벌이코노믹

프랑스 국채 55% 해외자본 의존…일본 자금 이탈 우려

일본 금리 상승에 해외 투자 유인 약화…프랑스 10년물 금리 5% 돌파
2030년까지 1조달러 이상 만기 도래…내년 국채 발행 3800억달러 전망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경제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각) 파리 경제재정부에서 2027년도 예산안과 재정적자 전망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경제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각) 파리 경제재정부에서 2027년도 예산안과 재정적자 전망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프랑스의 재정위기가 심화하면서 국채시장을 지탱해 온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 가능성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올랐다.

특히 일본의 금리 상승으로 일본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를 보유할 유인이 줄어들면서 프랑스 정부의 자금 조달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프랑스 국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해외 투자자들이 정치적 불안과 재정적자 확대를 이유로 추가 매입을 주저하는 가운데 일본 자금의 본국 회귀 가능성이 프랑스 채권시장의 주요 위험으로 부상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국채의 약 55%를 해외 투자자들이 보유했다.

이는 미국의 31%, 일본의 13%와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재정적자 조달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국가에 속한다.

그동안 프랑스 국채는 유럽에서 거래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채권으로 평가받았다.

유럽 2위 경제대국이라는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으면서 독일 등 다른 주요국 국채보다 금리가 다소 높아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가 꾸준했다.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해외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 매수에 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WSJ는 최근 프랑스 국채시장에서 이러한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투자자들, 해외채권보다 자국 국채에 관심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 감소 가능성이 제기되는 주요 배경에는 일본의 금리 상승이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해 왔으며 일본 기관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 프랑스 등 해외 국채에 투자했다.

그러나 일본 국내 금리가 상승하면서 해외채권에 투자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경제분석기관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의 클라우스 비스테센 유로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해외자본 의존을 프랑스의 큰 취약점으로 평가했다.

그는 일본 국내 채권금리가 높아지면서 해외에 투자했던 자금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스테센은 지난해 분석에서 일본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의 약 10~15%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프랑스 국채시장에서 일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다만 일본 투자자들이 최근 프랑스 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공식 통계는 발표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최근 국채시장 혼란기에 해외 투자자들의 실제 매매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프랑스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 투자자들은 지난 8월까지 3개월 동안 프랑스 국채 보유량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후 프랑스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투자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일본 생명보험사 일부 투자 축소…자금 회귀 가능성


일본 투자자 가운데 프랑스 국채 투자를 이미 줄인 집단도 있다.

씨티그룹의 후지키 도모히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일본 생명보험사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이 2022년 금리 인상에 나선 이후 프랑스 국채 보유량을 축소했다.

유럽 금리가 상승하면서 환율 변동에 대비하기 위한 환헤지 비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외채권에서 얻는 이자수익이 높더라도 환헤지 비용이 증가하면 실제 투자수익은 줄어들 수 있다.

후지키 애널리스트는 일본의 금리 상승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일본 투자자들의 점진적인 자금 회귀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지역의 국채 수익률도 높아져 프랑스 국채의 상대적인 매력이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보험그룹 알리안츠 계열의 세계적 채권운용사 핌코도 프랑스 국채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핌코의 콘스탄틴 바이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프랑스 정치권이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계획을 제시하지 않는 한 투자 판단을 바꾸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은 다른 시장에서도 좋은 채권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국채 31% 유로존 밖에서 보유


프랑스 국채의 해외자본 의존은 보유 투자자의 지역별 구성에서도 확인된다.

바클레이스의 로한 칸나 애널리스트는 프랑스 국채의 31%를 유로존 밖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유로존 회원국 투자자들의 보유 비중은 24%라고 추산했다.

유로존 외부 투자자들은 일본을 포함해 다양한 지역의 채권시장에 자금을 배분할 수 있다.

이들은 프랑스의 재정위험이 높아지거나 다른 시장의 수익률이 매력적으로 바뀌면 보유 채권을 매도할 수 있다.

해외 투자자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 은행들이 자국 국채를 대규모로 보유하면 정부의 재정위기가 은행의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대 이탈리아의 금융 불안은 국내 은행들의 높은 자국 국채 보유 비중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해외 투자자 비중이 높아 국내 금융기관과 정부 재정 사이의 위험 연결이 그만큼 약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해외 투자자들은 국내 투자자보다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재정감독기관도 2023년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해외 자금을 본국으로 회수하는 움직임이 1994년 국제 채권시장 혼란과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 채권 매도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 5% 돌파…독일과 격차 확대


프랑스 국채시장의 불안은 지난 9월부터 본격화됐다.

세계 국채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재정이 취약한 국가들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가 제시한 재정적자 감축 계획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국채 매도 압력이 커졌다.

여기에 지난 주말 발생한 대규모 폭동과 시위가 재정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졌다.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번 주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연 5%를 넘어섰다.

22일에도 국채금리 상승세가 이어졌다.

유럽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독일 10년물 국채와의 금리 격차도 1.6%포인트를 넘어섰다.

이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심각했던 2011년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금리 격차가 두 배 이상 확대됐다.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를 보유하는 데 더 높은 위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프랑스 정부가 높은 금리로 신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면 이자 부담이 커져 재정건전성 개선도 어려워질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도 국채 보유 축소…국내 은행 부담 우려


프랑스 국채시장의 또 다른 변화는 ECB의 국채 보유량 감소다.

ECB는 2010년대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당시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유로존 회원국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했다.

그러나 2023년부터는 양적긴축을 통해 보유 채권을 축소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까지 약해지면 프랑스 정부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프랑스 국내 은행들이 부족한 수요를 메울 가능성도 있다.

핌코의 바이트 매니저는 프랑스 은행들의 재무 상태가 양호하고 자국 국채 보유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아 추가 매입 여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은행들이 프랑스 국채를 더 많이 사들이면 기업과 가계에 공급할 수 있는 대출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채시장 안정이 민간 부문의 신용공급을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1조달러 이상 만기…내년 국채 발행 사상 최대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대규모 국채 만기 도래로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WSJ에 따르면 프랑스는 2030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만 1조달러(약 1322조3000억원) 이상을 상환해야 한다.

내년에는 약 3800억달러(약 502조4740억원) 규모의 국채를 새로 발행할 예정이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다.

프랑스는 과거 금리가 0%에 가까웠던 시기에 발행한 국채가 만기를 맞으면 훨씬 높은 금리로 신규 채권을 발행해 기존 채무를 차환해야 한다.

국채금리가 상승할수록 국가 재정에서 이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1%에 달했다.

핌코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신뢰성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국채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프랑스 국가신용등급 평가도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투자자들은 무디스가 23일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투자적격등급은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신용등급이 하향되더라도 국채금리가 즉각 큰 폭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일부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운용기관 등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 매입을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정적자 GDP 4%로 낮춰야 시장 신뢰 회복"


프랑스가 해외자본 이탈에 따른 국채시장 불안을 막으려면 재정적자 축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다.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의 비스테센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정부가 재정적자를 GDP의 4%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재정을 관리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5% 수준에 머물면 채권시장의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국채금리 상승으로 기존 채무를 차환하는 비용도 늘어나고 있다.

WSJ는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국채시장을 오랫동안 떠받쳐 온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 새로운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일본 투자자들이 자국 금리 상승에 따라 해외 투자자금을 점진적으로 회수할 경우 프랑스의 재정적자 조달 부담은 한층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