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수산과학원·NOAA·국제 연구기관 데이터 분석
동해를 떠난 냉수성 어종, 북상한 난류성 어종…한반도 바다의 대전환
동해를 떠난 냉수성 어종, 북상한 난류성 어종…한반도 바다의 대전환
이미지 확대보기수면 아래에서는 거대한 참다랑어 떼가 이동하고, 그 위로 돌고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먹이를 쫓는 돌고래와 회유하는 참다랑어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최근 동해에서 점점 익숙한 풍경이 되고 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명태와 대구, 도루묵이 동해를 대표하던 시절에는 쉽게 볼 수 없던 장면이었다.
바다는 같은 자리에 있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어종 변화는 단순한 수산자원 변동이 아니다. 해양생태계와 어업, 지역경제, 식문화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변화다.
동해의 겨울에서 사라진 명태
1980년대 겨울 강원도 주문진항은 명태로 가득했다.
새벽이면 수백 척의 어선이 항구로 들어왔고 부두에는 갓 잡은 명태가 산처럼 쌓였다. 덕장마다 수만 마리의 명태가 매달렸고 황태와 북어는 전국 시장으로 공급됐다. 명태는 동해안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수산자원이었다.
국립수산통계에 따르면 1981년 국내 명태 어획량은 약 16만7000톤에 달했다. 단일 어종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규모였다.
이미지 확대보기현재 한국 연근해에서 잡히는 명태는 사실상 통계적 의미를 찾기 어려운 수준까지 감소했다.
명태 감소는 일시적인 어황 부진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감소는 결국 한반도 해역에서 명태가 자취를 감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소비되는 명태 대부분은 러시아산이다.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캄차카반도 주변에서 어획된 명태가 한국 식탁에 오르고 있다.
명태 감소 원인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남획 논쟁이 이어졌지만 최근 연구들은 수온 상승과 산란장 환경 변화가 중요한 배경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명태는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다. 산란과 성장에 적합한 수온 범위는 대체로 2~1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수온이 상승하면 산란 성공률과 자어 생존률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성체는 이동할 수 있지만 알과 자어는 이동할 수 없다. 산란장이 무너지면 자원 회복도 어려워진다.
국립수산과학원과 국내 연구진은 동해 명태 자원 감소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산란장 환경 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오징어마저 줄어들기 시작했다
명태가 사라진 뒤에도 동해는 오랫동안 오징어의 바다로 불렸다.
1990년대 중반 국내 살오징어 어획량은 연간 20만톤을 넘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조업철이면 수백 척의 채낚기 어선이 동해 밤바다를 밝히며 조업에 나섰다.
최근 수년 동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국내 어획량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강원도와 경북 동해안 주요 위판장에서도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오징어 감소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 수산청과 일본 수산연구교육기구(FRA) 역시 대표적인 살오징어 자원 감소를 보고하고 있다. 중국 연구기관들도 동중국해와 동해 북부 해역에서 유사한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국제 연구진은 주요 원인으로 수온 상승과 산란장 북상, 먹이생물 변화, 해류 변동을 지목한다.
한국과 일본 자료를 비교하면 공통된 특징이 나타난다. 과거 동해 중남부와 대한해협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주요 어장이 일본 북부와 홋카이도, 러시아 극동 해역 방향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명태와 오징어 감소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배경에는 같은 변화가 존재한다. 바다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어와 삼치, 참다랑어가 올라왔다
냉수성 어종이 줄어드는 동안 난류성 어종은 빠르게 세력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어다. 과거 방어는 제주와 남해를 대표하는 어종이었다. 겨울철 제주 연안은 전국 최대 방어 어장으로 꼽혔다.
현재는 강원도 고성과 속초, 양양 일대에서도 대형 방어가 안정적으로 어획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정치망 조사 자료에서도 동해안 방어 출현 빈도 증가가 확인된다.
삼치와 전갱이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강원도 연안에서 대형 방어와 삼치를 주요 어획 대상으로 삼는 모습은 흔하지 않았다. 현재는 계절 어업의 중요한 수산자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참다랑어 출현 빈도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동해 중부 해역과 동해가스전 인근에서는 대규모 참다랑어 떼가 관찰되고 있으며 이를 따라 돌고래 무리가 출현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때 명태와 대구가 대표하던 바다에서 세계 최대 회유성 어종 가운데 하나인 참다랑어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한국 바다의 주인공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뜨거워진 한국 해역
물고기 이동 뒤에는 분명한 과학적 변화가 존재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정선해양조사 관측 결과를 보면 최근 57년간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수온은 약 1.58℃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표층수온 상승폭은 약 0.74℃였다.
한국 해역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해역별 상승 폭은 동해가 가장 컸다.
최근 57년 동안 동해 표층수온은 약 2.04℃ 상승했다. 서해는 1.44℃, 남해는 1.2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 온난화가 특히 빠른 이유로는 대한해협을 통해 유입되는 쓰시마난류 세력 강화와 동해 수온 전선 북상 등이 지목된다.
2024년 우리 바다 연평균 표층수온은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동해와 남해, 서해 모두 역대 최고 수온을 기록했다.
NOAA가 주목한 해양열파
최근 국제 해양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해양열파다.
해양열파는 특정 해역에서 비정상적인 고수온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NOAA 연구진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해양열파 발생 빈도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북서태평양은 변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해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국과 일본 연구진 역시 동해와 동중국해에서 발생하는 해양열파가 해양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고 있다.
수온 상승은 플랑크톤 군집 변화로 이어진다. 플랑크톤이 바뀌면 어린 물고기의 먹이 환경도 달라진다.
먹이생물 변화는 성장률과 생존률 변화로 연결된다. 따뜻한 바닷물은 차가운 바닷물보다 산소를 적게 품는다.
결국 물고기 입장에서는 먹이는 줄고 대사 부담은 커지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미지 확대보기물고기보다 먼저 흔들린 먹이망
국제 학술지 Nature Climate Change와 Fisheries Oceanography 등에 발표된 연구들은 해양생태계 변화의 출발점을 플랑크톤에서 찾는다.
해양 먹이망은 식물플랑크톤에서 시작된다.
식물플랑크톤이 줄어들거나 종류가 바뀌면 동물플랑크톤이 영향을 받는다. 동물플랑크톤 변화는 어린 물고기 생존률 변화로 이어진다.
결국 상위 포식자인 어류 분포까지 달라진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서도 일부 냉수성 플랑크톤 감소와 난류성 생물 증가 경향이 보고되고 있다.
명태와 오징어 감소, 방어와 삼치 증가, 참다랑어 출현 확대는 각각 독립된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변화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다.
한국 바다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한반도 바다는 지금 새로운 해양환경 속으로 이동하고 있다.
명태가 사라진 자리를 방어가 채우고 있고, 오징어가 줄어든 바다에서는 참다랑어 떼가 관찰되고 있다.
제주에서 시작된 변화는 남해를 지나 동해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 냉수성 어종 중심으로 형성됐던 한반도 해양생태계의 경계선도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어민들은 바다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관측자료를 통해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인공위성은 매일 바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한반도 바다는 이미 과거의 바다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바다에서 사라진 물고기들은 지금 어디로 이동했을까.
다음 회에서는 한·중·일 어획량 자료와 국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라진 물고기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