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글로벌 은행 리스크에 결국 드러난 '채권버블'

공유
0

[초점] 글로벌 은행 리스크에 결국 드러난 '채권버블'

한은 "국내 금융기관은 건전성 양호…영향 크지 않을듯"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은 금리 상승으로 인한 채권 버블 붕괴의 여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은 금리 상승으로 인한 채권 버블 붕괴의 여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 리스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SVB의 붕괴는 채권 버블이 무너진 여파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에 맞서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채권 가격도 함께 폭락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 어드바이저리 그룹 최고 투자 책임자는 "역사상 가장 큰 금융 거품인 국채 버블이 무너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7년부터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채권 시장의 버블이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2017년에는 당시 연준의 장기적인 금융 완화 정책으로 채권 가격은 상승하고 금리는 하락하던 시점이다. 이로 인해 연준이 사들인 미국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권(MBS)에 민간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그린스펀이 지적한 채권 버블은 은행 리스크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SVB 파산과 채권 버블


미·유럽 은행 리스크는 지난 10일 SVB의 파산으로 시작됐다. SVB는 기술 기업 및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자금을 지원하던 은행으로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이었을 때 미국 국채와 모기지 채권 투자에 나서면서 자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은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비례 관계에 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수요가 감소하면서 가격이 하락한다.

2022년 4월부터 그해 말까지 9개월 동안 예금 230억 달러(약 30조 원)가 빠져나갔다. SVB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채권을 입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SVB가 18억 달러(약 2조 34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SVB는 단 하루만에 주가가 60% 급락하고 420억 달러 상당(약 54조7050억 원)의 예금이 빠져나가면서 급격하게 무너졌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SVB가 단기 자금을 빌려 장기 자산에 투자하는 은행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채권 버블 붕괴


채권 버블을 경고한 그린스펀은 '채권 대학살'로 유명하다. 1994년 2월 4일 당시 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은 갑작스럽게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그린스펀은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총 7차례 동안 금리를 3%에서 6%까지 두 배로 인상해 공격적인 긴축 정책을 펼쳤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1994년 1월 5.75%에서 12월 7.8%로 약 8% 가까이 상승했다.

예상치 못한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채권 포트폴리오 가치가 떨어져 한 해 동안 1조 달러(약 1303조 원) 이상의 자금이 증발했다. 헤지펀드가 폭락하고 은행이 적자로 돌아섰으며 이로 인한 충격은 주식시장까지 타격을 입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이 사건을 '채권시장 대학살(Bond Market Bloodbath)'로 명명했다.

2019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채권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이 경기 침체에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BofA는 초저금리 시대가 향후 10년 내에 끝날 것으로 전망해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정책에 대해 예고하기도 했다. BofA는 "앞으로 10년간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많은 수의 매우 낮은 금리의 장기국채 또는 회사채에 자금을 예치한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 미국 은행들은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에 투자해왔다. 그러나 금리의 급격한 상승으로 보유 채권의 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해 미실현 손실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2022년말 기준 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미실현 평가 손실 총액은 6204억 달러(약 808조3812억 원)로 전년도 79억 달러(약 10조2937억 원)에 비해 약 78배 급증했다.

현재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6%에 달한다. 금리 인상이 지속되면서 자산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미국 예금주들은 예금을 빼내 금리가 높은 MMF(머니마켓펀드)로 자금을 옮기고 있다. 데이터 제공업체 EPFR에 따르면 3월 MMF에 유입된 자금은 약 2860억 달러(약 372조6580억 원)다.

이에 따라 미국 지방은행은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예금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경영 리스크가 더 확대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 불안은 미국에서 유럽으로 번지고 있다. 몇 년 동안 스캔들에 휘말려 경영 위기를 겪던 크레디트스위스그룹은 UBS에 매각됐다. 24일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22bp까지 급등해 위기설에 휩싸였다.

SVB 파산이 한국에 미칠 영향

SVB 붕괴는 금리 상승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로 볼 수 있다. SVB를 시작으로 미국 중소형 은행들이 연달아 파산하고 있지만 2008년 리먼 사태와 같이 글로벌 금융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젠스 하겐도르프 킹스 칼리지 런던 금융학 교수는 "전반적으로 은행 시스템은 양호한 상태이며 상당한 충격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마요 웰스파고 수석 은행 애널리스트는 "1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완전이 다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에는 은행들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 은행은 그 어느 세대보다 회복력이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미국 규제당국 역시 은행 리스크가 확산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SVB가 파산하자 예금을 전액 보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근 미국 재무부는 FDIC의 예금 보호 한도를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SVB파산 사태가 국내까지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지난 23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보고서에서 SVB가 파산한 이후 국내 금융 시장 변동성은 높아졌지만 미국 규제당국의 빠른 대응으로 국내 금융시장내 위험회피 심리 확산이 둔화됐다고 전했다.

은행 등 주가 하락폭도 제한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3월 10일부터 17일까지 KB금융은 2.5%, 신한은 3.5%, 우리는 1.9% 하락했다.

한은은 국내 금융기관이 SVB 등과 자산·부채 구조가 상이하다고 분석했다. 금융규제로 인해 유동성 및 건전성 상황도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평가했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은 총 자산 중 채권 비중이 낮고 이에 연계된 금리리스크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채권 등 유가증권 비중은 일반은행 18.1%, 저축은행은 4.8%를 차지한다. SVB가 56.7%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부채 구조의 취약성, 금융 부문간 높은 상호 연계성 등으로 금융 시스템이 대내외 여건 변화에 과도하게 반응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외 요인이 국내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 부진 등 대내 요인과 맞물리면 외국인 증권 투자자금 유출 및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유동성 등에 대한 우려가 부각될 수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전반적인 경영 건전성은 양호하다"고 평가해 국내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훈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unjuro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