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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경제, 또 ‘불확실한 여름’ 맞나…기업들 “트럼프도 자기 다음 행보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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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경제, 또 ‘불확실한 여름’ 맞나…기업들 “트럼프도 자기 다음 행보 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미플린에 위치한 US스틸 공장을 방문해 현장 근로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미플린에 위치한 US스틸 공장을 방문해 현장 근로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경제가 다시 한번 불확실한 여름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경제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관세 정책 변화로 인해 고용과 투자를 보류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와 금융시장을 통해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의 고용 지표는 겉보기에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달 13만9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고 실업률도 4%에서 4.2% 사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은 "표면 아래에 균열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경기 예측 불가능성과 관세 정책의 급변으로 인해 장기 계획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육가공 기계를 수입·제조하는 울트라소스의 존 스타르 대표는 WSJ와 인터뷰에서 "관세가 언제 또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인력 채용이나 설비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관세가 10%로 오르면서 유럽에서 들여오는 2000만 달러(약 277억원) 규모의 주문에 200만 달러(약 28억원) 세금이 붙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돈을 어떻게 내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연간 수익이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몇 달 동안 수차례에 걸쳐 주요 국가들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거나 인하했다. 일례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는 한때 145%까지 올랐다가 지난달 30%로 낮아졌다. 대부분의 국가에 대해서는 10% 수준의 관세 인상이 적용됐으며 일부 국가에 대한 더 높은 관세는 내달 초까지 유예됐다.

WSJ는 이같은 불확실성이 세 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 경제를 압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는 고용시장이다. 최근 기업들은 인력을 충원하진 않지만 해고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EY의 그레고리 다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하나의 대형 기업이 해고를 시작하면 경쟁사들도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소비자의 지출 감소 가능성이다. 최근 1년간 소비자 부채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재정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침체 상태다. 부동산 중개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미국 주택 시장은 현재 매수자보다 매도자가 50만명 더 많은 상태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 격차다. 레드핀의 천 자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시장이 2년 반 동안 바닥을 친 상태였고 올해 반등 기대가 있었지만 오히려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금융시장이다. 지난해 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해 일시적인 완화 효과를 줬지만 올해는 물가 불안 우려로 금리 인하를 보류한 상태다. 장기금리는 계속 높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업 투자와 고소득층 소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발 정책 변화는 각 기업의 재무계획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울트라소스의 스타르는 "수개월 걸리는 맞춤형 제품을 주문해놓고 고객이 관세 부담을 거부하면 손해를 그대로 떠안게 된다"며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현재 이미 30만 달러(약 4억1600만원) 규모의 예기치 못한 지출이 발생한 상태다.

백악관은 관세 정책이 공급망을 미국 내로 이전하도록 유도해 장기적으로는 무역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티븐 미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은 "다른 나라가 관세 부담을 지도록 하려면 공급망을 국경 밖으로 옮기겠다는 위협이 현실성 있게 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책 세부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물가 상승률에 대한 전망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란은 또 의회를 통과 중인 감세 법안이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울트라소스의 스타르는 "이익이 관세로 다 사라지면 감세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관세가 20%로 고정되더라도 주문과 계약 협상이 끝난 뒤에는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도 25%에서 50%로 인상되면서 미국의 철강 생산업체들은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자동차 제조업체나 캔 제조업체, 그리고 티탄스틸과 같은 철강 유통업체들은 수익성 압박을 받고 있다. 티탄스틸의 빌 허튼 대표는 "우리도, 고객도, 해외 공급업체도 장기적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는 상태"라며 "그저 버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카라이슬그룹의 제이슨 토머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시기 초저금리로 리파이낸싱한 덕에 경제가 과거 금리 인상기에도 견뎌낼 수 있었고 이후엔 인공지능 투자 붐이 경기 확장의 동력이 됐다"고 분석하면서도 "이 같은 기술 충격은 과잉투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조정 가능성을 경고했다.

WSJ는 "에너지 가격 하락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압박을 멈춘다면 경기 확장이 2~3년은 더 지속될 수 있지만 계속 흔들 경우 내년 초에는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제분석기관 비콘이코노믹스의 크리스토퍼 손버그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