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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역사 獨 섬유 기계 거두 '마이어 앤 씨', 中 자본에 피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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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역사 獨 섬유 기계 거두 '마이어 앤 씨', 中 자본에 피인수

중국발 보조금·저가 공세와 에너지 비용 폭등에 파산 선언… 후이싱 머신러리가 인수
'시장 확보용 수직 통합'으로 당국 규제 통과… R&D 독일 유지 및 재고용 약속
전문가 "틈새시장 특화 및 아시아 공급망 사각지대 공략해야 유럽 제조업 생존"
마이어 앤 씨는 독일 남서부 알브슈타트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체코와 중국에도 자회사를 두고 있다. 사진=마이어 앤 씨이미지 확대보기
마이어 앤 씨는 독일 남서부 알브슈타트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체코와 중국에도 자회사를 두고 있다. 사진=마이어 앤 씨
H&M, 유니클로, 데카슬론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의류를 생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온 120년 역사의 독일 섬유 기계 거장 '마이어 앤 씨(Mayer &Cie)'가 결국 중국 경쟁사의 손에 넘어갔다.

중국발 저가 공세와 우크라이나 전쟁발 인플레이션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결과로, 유럽 제조업계가 직면한 잔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16일(현지시각)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지난해 파산을 선언하고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던 가족 소유 기업 마이어 앤 씨가 중국 취안저우에 본사를 둔 '후이싱 머신러리(Huixing Machinery)'에 비공개 금액으로 전격 인수되었다.

이번 인수로 후이싱은 독일 알브슈타트 본사를 비롯해 체코와 중국 진탄에 위치한 자회사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보조금 앞세운 중국의 공세… 견딜 수 없었던 유럽의 가치


마이어 앤 씨는 4세대에 걸쳐 평판 기계보다 생산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원형 뜨개질 기계(원형 재봉틀)'를 제조하며 세계 시장을 호령해 왔다.

이들이 만든 기계는 분당 1,200만 코 이상을 처리하며 시간당 티셔츠 380벌을 쏟아내는 기술력을 자랑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8만 대 이상의 기계가 가동 중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은 후발 주자들의 파괴적인 가격 경쟁력이 발목을 잡았다.

마이어 앤 씨는 파산 신청서에서 "중국의 국가 보조금을 받는 제조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기계를 저렴하게 투하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유럽산 기계는 중국산보다 최소 20% 이상 비싸 가격 경쟁이 불가능했다.

여기에 미·중 무역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내 에너지 비용 폭등, 그리고 주요 수출국인 터키의 초인플레이션 악재까지 겹치며 전통의 명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기술 유출 아닌 '시장 확대'… 獨 당국이 승인한 배경


독일 당국이 이번 인수를 승인한 것은 민감한 첨단 기술 이전이 아닌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수직 통합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들 컨설팅의 왕자웨이 중국 실무 책임자는 "후이싱은 섬유 기계 산업의 핵심 시장을 쥐고 있어 마이어 앤 씨의 글로벌 영향력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후이싱은 독일 알브슈타트 본사의 제조, 연구·개발(R&D) 등 핵심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해고된 직원들을 점진적으로 재고용하겠다는 당근책을 제시해 독일 정부의 승인을 이끌어냈다.

"중국 소유가 오히려 기회?"… 연이은 M&A 잔혹사 혹은 부활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자본의 인수가 반드시 브랜드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듀어콥 애들러(Duerkopp Adler)는 1860년 설립된 독보적인 산업용 재봉틀 기업으로 2005년 중국 상하이 상공 그룹에 인수될 당시 유럽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 공장에서 1,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며 중국 소유 하에서 수익성이 크게 향상됐다.

원형 뜨개질 분야에서 역사적인 이름을 가진 테로트(Terrot) 역시 2023년 파산 후 이탈리아-중국 합작 그룹인 산토니 상하이에 인수되었으나, 현재 직원 구성을 온전히 유지한 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섬유 기계의 생존 방정식: '틈새시장'과 '규제 장벽'


독일기계장비제조업체협회(VDMA)의 니콜라이 스트라우치는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자금, 에너지, 인프라 지원을 등에 업고 유럽 기업들의 텃밭을 잠식하고 있다"면서도 유럽 기계만의 확실한 우위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기계는 수명이 길고 성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 및 순환 경제 솔루션 등 까다로운 EU 환경 규제 준수 부문에서 압도적인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섬유 컨설팅 기업 게르지(Gherzi) 독일의 안톤 슈만 CEO는 유럽 제조업체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대량 생산 시스템이 침범하기 어렵거나 복잡한 '틈새 제품(Niche Market)'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예를 들어 의료용 니트나 여과용 부직포 같은 고부가가치 부문에 특화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프리미엄 기계 공급업체들이 아직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모로코, 튀니지, 요르단, 터키, 남부 스페인 등 지리적으로 인접한 '니어쇼어링(Nearshoring)' 시장을 집중적으로 개척하는 것만이 중국 자본의 공습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