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6 08:47
오랜만에 제법 큰 눈이 내렸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아니면 눈이 내리기 무섭게 염화칼슘을 뿌려대는 부지런한 도로관리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시에선 좀처럼 쌓인 눈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모처럼 눈길을 걸을 수 있었다. 눈은 잿빛 도시의 풍경을 한순간에 동화의 세계로 바꾸어 놓는다. 앙상하던 나목의 가지마다 풍성하게 흰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조붓한 골목길에도, 쓰레기가 가득 담긴 종량제 봉투 위에도 눈은 마치 흰 천으로 모든 물상을 다 감싸듯 내려 쌓인다. 세상 모든 것을 눈으로 덮어놓고 만물이 잠든 속에서 다시 시작을 준비하는 듯하다. 그래서 눈 내린 아침은 세상의 첫 아침처럼 경건하고 거룩한2022.01.19 09:08
날씨가 춥다. 절기상 소한(小寒)이 지나고, 대한(大寒)도 멀지 않은 때이고 보니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코로나19로 뒤숭숭해진 시절 탓으로 몸과 마음이 한층 추위를 타는 듯하다. 간밤엔 싸락눈까지 내렸다. 왕소금을 뿌려 놓은 듯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싸락눈 밟히는 소리가 더욱 추위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춥고 스산한 겨울밤엔 백석을 읽는다. 추운 북녘땅이 고향인 백석의 시를 읽으면 한겨울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오롯이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등장하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란 시다2022.01.12 08:53
숲길을 따라 걸었다. 장갑을 끼었음에도 손끝이 시려오고 귀가 얼얼할 만큼 바람이 차다.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숲의 공기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온몸이 떨려온다. 때로는 성가시고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숲길을 걷는 이 산책을 멈추지 않는다. 잎을 모두 떨군 채 깊은 묵상에 잠긴 겨울나무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지만 적요하기까지 한 숲의 고요 속을 거닐며 사색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는 일이란 곧 걷는 일이라고 했다. 제아무리 교통수단이 발달해도 결국 인간의 삶은 걸으면서 시작되고 걸음이 멈춘 곳에서 끝이 난다. 그런 의미로 보면 걷는다는 것은 건강을 위한 운2022.01.05 08:27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 떠들썩한 해맞이 행사도 없이 또 한 해를 맞이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내 삶을 돌이켜보면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을 뿐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중요한 일은 별로 없다. 크고 중요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는 게 더 바람직하단 생각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기 때문이다. 임인년인 올해는 검은 호랑이해라고 한다. 호랑이해인 만큼 모두가 호랑이의 눈으로 이웃을 잘2021.12.29 08:45
혹한의 추위 속에 2021년이 저물어간다. 마지막 잎새 같은 묵은 캘린더를 떼어내고 새 캘린더로 바꾸어 걸며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아, 벌써 일 년!'이었다. 연초에 호기롭게 세웠던 그 많은 계획은 얼마나 이루었는가.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올 한 해도 하릴없이 흰 머리 숫자나 늘리며 생의 잔고만 축낸 것은 아닌가 싶다. '인생 뭐 있남? 그냥 재미있게 살믄 되는 겨.' 하던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하루하루 즐겁게 살지도 못했고 한해살이풀처럼 세상에 내어 보일 실한 열매 하나 없이 지난 삼백예순 날이 낙엽처럼 흩어진 것만 같아 쓸쓸해진다. 가족이나 이웃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못했고 자신에게도 충실하지 못했고, 그2021.12.22 06:00
겨울로 접어들면서 산으로 가는 발길이 뜸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꽃들도 사라지고 녹색 옷을 모두 벗어버린 나목들이 벌을 서듯 서 있는 겨울 숲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선뜻 마음을 내기 쉽지 않다. 차라리 가까운 소공원이나 식물원을 찾아가는 것이 겨울 정취를 즐기기엔 더 나을 수도 있다. 꽃과 잎이 사라져 고스란히 드러난 나무의 수형과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열매들, 저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닌 수피와 마른 풀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겨울만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를테면 흰 꽃송이가 마른 채로 그대로 달린 나무수국과 붉은 열매와 단풍 든 잎이 멋스러운 남천 위로 눈이 내리면 여느 계절에 못지2021.12.15 09:06
다행히 부스터 샷을 맞았다. 연일 수천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와중에 코로나를 피해 부스터 샷까지 접종을 마친 것이다. 주사를 맞은 부위에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을 뿐 별다른 후유증은 없다. 그 또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가장 두렵고 조심스러운 탓에 연말의 많은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지레 몸이 떨려온다.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묻는 일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커다란 바윗덩이를 가슴에 얹고 사는 것처럼 답답하다. 이도 저도 어찌할 수 없을 때 내가 가장 쉽게 택할 수 있는 일이 산책이다.2021.12.08 10:54
마침내 12월이다. 달랑 한 장, 마지막 잎새 같은 12월의 달력은 낙엽처럼 흩어진 세월과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의 갈피를 뒤적이게 한다. 조심스레 일상으로의 회귀를 꿈꾸던 위드코로나도 오미크론의 공포 속에 멈춰버린 올 겨울은 유난히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희망을 다짐하기에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살을 에는 찬바람보다 더 엄혹하다. “…/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 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生)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고 한 황지우의 ‘12월’이 우리가 마주한 세상이 처한 현실이다. 법정스님이 쓴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 숲 간)에2021.12.01 09:12
새벽 산책길에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다. 밤을 지나온 유리창엔 어김없이 흰 성에꽃이 피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들판의 꽃들 모두 사라지고 나면 마음이 허전할 것만 같아서 가까운 화원에 들러 칼랑코에 화분을 샀다. 볕 잘 드는 창가에 놓아두면 겨우내 꽃을 볼 수 있을 거라 했다. 돌나물과의 다년생 다육식물인 칼랑코에는 마다가스카르가 원산지다. 자잘한 꽃들이 올망졸망 모여 마치 별들이 내려앉은 듯 화려함을 뽐내는 칼랑코에는 늦가을에서 봄까지 꽃을 피운다. 섭씨 10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하고 속흙이 바짝 말랐다 싶으면 한 번씩 물을 흠뻑 주기만 하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자란다. 꽃말은 ‘설렘’이다. 이2021.11.24 10:29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지났다. 창밖에는 아직도 가을이 상영 중이지만 가을이라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머지않아 눈은 내려 온통 세상을 하얗게 덮을 것이다. 이미 설악산엔 눈이 내려 쌓이고 서울에도 첫눈이 흩뿌렸지만 나는 아직도 아이처럼 첫눈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 시인이 “경지 정리가 잘 된 수백만 평 평야를/ 흰 눈이 표백하여 한 장 깨끗한 원고지를 만들어 놓았다”고 표현했듯이 눈이 내려 쌓여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지워 만든 순백의 원고지 빈칸에 설레는 마음으로 나의 문장을 적어 넣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아름답지만 너무 짧다. 갈수록 가을은 짧아져서 오는2021.11.17 09:29
일찍 찾아든 추위에 몸보다 먼저 마음이 움츠러드는 요즘이다. 활엽수들은 곱게 물든 이파리를 자랑할 틈도 없이 찬바람에 서둘러 잎을 내려놓는다. 찬란한 새봄을 맞이하기 위한 나무들의 겨울 준비는 남김없이 비우는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낙엽귀근(落葉歸根). 잎은 떨어져 다시 뿌리로 돌아간다. 자신에게 생명을 준 흙에 보답이라도 하듯 나무는 곱게 물든 이파리들을 모두 떨구어 대지를 덮어주고 알몸으로 찬바람을 견디며 겨울을 나는 것이다. 찬바람에 손끝이 시려오는 아침 산책길에서 민들레를 만났다. 바람 없어도 우수수 잎이 지고, 꽃보다는 열매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겨울 들머리에서 민들레꽃을 보다니! 추위에2021.11.10 14:23
지난 8일은 입동(立冬)이었다. 30년 만에 가장 따뜻한 입동이라는 뉴스처럼 절기가 무색하게 한낮의 기온이 20도 이상 올라가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계절은 오라고 손짓한다고 오고, 오지 말라고 손사래 친다고 해서 오지 않는 법이 없다. 인간이 오랜 세월을 두고 경험과 지혜로 만든 절기는 어김없이 시간의 눈금을 정확하게 짚어 낸다. 따뜻했던 어제와 달리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비를 맞은 나무들이 빗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연신 잎을 떨구고, 바닥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서로 몸을 포갠 채 내리는 찬비를 맞고 있다. 이 비 그치고 나면 곧 겨울이 들이닥칠 것이다. 며칠 전2021.11.03 10:20
가을 산의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어느 해 가을이던가.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 산을 바라보며 꽃상여를 닮았단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단풍 든 가을 산이 마치 한 생을 마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꽃상여처럼 화려하면서도 처연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을 들머리에 찾아왔던 첫 추위도 가을볕에 스러지고 눈길 닿는 곳마다 곱게 물든 나뭇잎들이 나를 향해 손짓하건만 변변한 단풍 나들이도 못한 채 11월을 맞았다. 묵은 달력을 떼어내며 “세월이여/발자국을 먼저 찍어 놓다니!”라고 탄식한 함민복 시인의 ‘달력’이란 시를 입속에 넣고 웅얼거려 본다. 굳이 먼 길을 떠나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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