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8 11:41
보훈의 달을 맞아 국립극장 별오름에서 개최된 보훈전국무용경연대회 무담(舞談)의 제6회 국제신인작가전에 출품된 『모던타임』은 영화 ‘모던타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써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한 한국무용이다. 근대화의 꽃망울이 피어나던 참혹한 암흑기의 경성시대, 그 개혁의 시대에 서구 문물을 앞서 받아들였던 단발, 신사복, 백구두로 치장한 모던보이와 양산에 양장을 한 모던 걸들은 시대의 브랜드 창출에 일조한다. 그들은 패션과 스타일을 선도하며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대담한 행보를 연출하였다. 정보에 빠른 그들은 자주독립을 위해서라면 초개과 같이 자신을 희생한다. 안무가는 가슴 한 구석, ‘평범한 청춘’으로 살고 싶었던 1930년대의 그들의 영혼에 보내는 위무(慰舞), 조국을 사랑한 청춘들의 희생정신과 그 아픔을 현대적 감각으로 버라이어티, 패키지, 예술성과 상업성의 혼재를 떠올리게 하며 폭풍처럼 시대의 간극을 훑어간다. 4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장 ‘숨’, 2장 ‘어둠, 살아간다는 아픔’, 3장 ‘현실, 살아간다는 기쁨’, 4장 ‘청춘, 1930. 아프기도, 기쁘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성격, 주제, 배경이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룬 이 작품은 춤 연기자 세 사람의 기교와 밀도감으로 안무가의 성숙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2015.06.17 14:11
최근 분당중앙공원 야외특설무대에서 예술단 ‘결’이 주최하고 신미경이 총괄 연출, 안무한 2015년 '제2회 검무축제'가 펼쳐졌다. 칼의 울림과 선(線)을 쫓다보면 시대를 넘나들고, 많은 역사가 스쳐간다. 한 때 갇힌 칼시대의 아픔을 딛고 열린 칼을 지향하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신미경은 칼의 춤(劍舞)를 자신의 숙명적 인연으로 삼고 검객과 학자, 애호가, 후원자를 초청하고 두 번째 검의 향연을 마련했다. 조선 중기 문신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의하면 조선조 ‘뚝제’는 왕이 참가한 가운데 성남일원에서 시행되었던 군사훈련인 강무(講武)행사 시, 장수의 황색 기(旗)에 올리던 제사’를 일컫는다. 이 때, 제례를 봉행하면서 정도전의 시에 곡을 붙인 주납씨가(走納氏歌)를 연주하여 올렸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음복례를 하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장사(將士)들이 검무(劍舞)를 추었다. 현대 감각에 맞게 구성된 『뚝제』는 기원무(예술단‘결’), 둑무천고(纛舞天告, ‘기’ 예무단) 아리랑(명승 무예단), 하독검수천무(예술단‘결’), 광대 그리고 칼(무예공연예술단 지무단), 단검술과 총검술(특공무술 Tk-타이거즈), 창瘡,화華(예지 Sword Art),즐풍목우(櫛風沐雨, 십팔기무예보존회), 절차탁마(切磋琢磨, 예술단‘결’), 진검승부(김윤정, 이창경)의 열 편 으로 구성되었다.2015.06.15 12:56
최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서울시무용단(예술감독 예인동)의 광복 70년 기념 대공연 국수호 안무의 『신시(神市)―태양의 축제』는 거대한 상고사가 꿈틀되며 기지개를 펴는 장엄미를 선사하였다. 한국무용사에 길이 빛날 역작으로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창작춤극 『신시(神市)―태양의 축제』 는 동아시아 문명의 기원인 홍산문화(紅山文化)를 재현한 작품이다. 새로운 문화원형으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우리 춤의 국제화에 기여할 대표작이 되었다. 신시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흥미진진하다. 태양이 하늘의 한가운데에 위치했을 때, 오신상(五神像)을 앞세우고 천족의 환웅과 풍백, 우사, 운사의 삼천의 무리가 구름을 뚫고 강림한다. 그는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통치를 한다. 땅을 숭상하는 웅(곰)족은 포악한 호(호랑이)족의 지배하에 놓여 고난을 당하고 있다. 호족장은 웅족의 여족장 웅녀를 농락하고, 쫓기던 웅녀는 환웅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전형적 갈등의 도식적 구성은 늘 익숙한 풍경이어서 신비적 상고사의 낯설음을 털고 관객에게 쉽게 다가오고, 새로운 문화형성자 안무가 국수호는 이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손질한다. 그의 손길이 닿는 작품마다 ‘그의 기법’은 빛나는 ‘비료효과’를 뿌리게 된다.2015.06.10 15:40
중원을 중심으로 전국 아우르는 빛나는 한 축달빛 아래 퍼지는 꽃향기처럼 짙은 여운 남겨김진미(金眞美, Kim Jinmi)는 1972년 5월 6일(음) 아버지 김창한, 어머니 장정자 사이의 1남 3녀 중 3녀로 충북 충주에서 출생했다. 충주에서 삼원초등, 북여중, 예성여고를 마치고 청주대 무용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 세종대에서 무용학 박사를 취득했다. 진주 같은 하얀 피부에 균형 잡힌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춤은 역동성과 유연성을 모두 수용하며 독창적인 자신의 춤 향을 소지한 부지런한 춤꾼으로 각인된다. 이른 봄날 여섯 살의 진미는 어머니와 같이 장구소리가 풀풀 나던 도라지 무용학원을 들르게 된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봉착한 그녀는 며칠 후 미련 때문인가 무작정 그곳으로 향해 있었고, 이미 미아로 파출소에 신고가 된 상태였다. 학원 신발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어린 딸을 발견한 부모들은 그날 바로 춤을 배울 수 있도록 등록시켜주었다. 그녀의 선망한 춤 인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자신이 원하고 갈망했던 춤꾼과 안무가로서의 길은 험난하고 힘든 길이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녀를 지도하고 조련한 스승들은 정화진(충주, 6세부터 9세), 엄정자(충주, 10세부터 13세), 이민연(충주, 14세부터 16세), 17세부터 18세 6월까지는 충주에 무용학원이 없었으므로 홀로 연습, 박시종(청주, 18세 7월부터 19세), 박재희(청주대 무용과, 20세 ~ ), 김은희(밀양검무 사사, 38세 ~)에 이른다.2015.06.10 07:54
삶의 의미와 방향감 가지고 살아야 행복한 인생 가능훌륭한 가르침도 각자가 주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요즘 주위에서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무엇인가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쁘기는 한데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인생의 의미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동시에 우리들의 일상의 삶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해준다. 당연히 삶의 의미와 방향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필수 요소이다. 그런데 사는 의미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배로 말하자면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목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표가 없으니 방향을 정할 수 없고 그냥 물결 따라 흘러가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아갈 이유도 없고 에너지도 없이 물결 따라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은 다르다.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실보다 해석이다.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고 꾸중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 꾸중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미워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큰 차이가 있다.2015.06.03 15:28
정재만 선생에게서 허튼춤 사사춤의 미학 한 단계 끌어올린 춤의 마술사이미희(李美姬, Lee Mi Hee)는 1남 1녀 중 장녀로 1975년 12월 7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여덟 살 때 리틀엔젤스 전단지에 나와 있는 부채춤 사진을 보고 부모님을 졸라 열 살 때 리틀엔젤스에 입단, 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성공의 인자를 소지하고 비교적 유복하게 태어난 그녀는 경복초, 선화예중고, 숙명여대 무용과를 거쳐 숙명여대 대학원 석사,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의 스승 정재만은 ‘이미희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로 창작을 제대로 해내는 춤꾼’ ‘끈기가 있고 힘이 있으며 역동적이지만 여성스러운 부드러움도 함께 하는 춤사위 구사를 잘한다’ ‘때론 강렬하고 긴박함을 조였다 푸는 여백마저 있다’ ‘춤의 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이미희의 춤은 카리스마가 있고 맑음 또한 존재한다, 신명과 흥을 적절히 조절해서 쏟아내는 춤의 마술사’라고 신뢰할 수 있는 제자임을 피력했다. 그녀가 꼽는 대표적 스승은 실기 분야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인 숙명여대 고(故) 정재만 교수, 학술 분야로는 박사 지도교수 한양대 김운미 교수를 꼽는다. 그녀에게 정재만은 허튼춤을 유일하게 사사해준 스승이었으며, 그녀는 정재만에게 자신의 맥을 이어갈 책임 있는 전통춤꾼이자 제자로 이십여 년 가까이 안무가로 활동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창작안무가이다.2015.06.02 14:53
최근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에서 공연된 장구보 안무의 『무용과 사유(思惟)』는 아트센터 상주단체 구보댄스컴퍼니 창단 15주년 기념(2000년 창단)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다. ‘춤으로 소통하다’는 이 단체의 단훈이다. 그녀는 느긋하게 단원들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부평지역 출신의 무용수들로 인천을 중심으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눈물겨운 시도와 노력으로 방법론을 찾아온 15년 동안 구보댄스컴퍼니는 매년 새로운 창작 작품과 다양한 레퍼토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단체는 공연활동 외에도 예술교육과 문화서비스로 지역과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스넥컬쳐가 트렌드가 된 이 세상에서 진지함을 부각시킨 『무용과 사유』는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 지역, 춤 장르, 구성원, 제작비 등에 얽힌 많은 사연을 안고 팀을 꾸려온 장구보 안무의 『무용과 사유(思惟)』는 『니체의 낙타』와 『네 이웃의 것을 탐하라』라는 작품으로 구성, 경박함을 차단하고 춤과 삶 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추구한다. 그녀는 독일 철학자들의 사상과 지성들의 작품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고 공연으로 보여 주었다. 『니체의 낙타』, 이 작품은 1장 ‘이데아를 꿈꾸는 세상’, 2장 ‘현재시제’, 3장 ‘낙타의 꿈’으로 구성된다.2015.05.31 13:03
최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이미희의 『몸의 기억』(부제/이미희의 허튼춤)이란 제목의 ‘허튼춤’ 공연이 있었다. 한국무용가 이미희의 허튼 춤에 관한 명상, 그 연행(演行)은 정재만의 허튼춤의 맥을 있겠다는 각오에서 시작된다. 작년 7월 12일 타계한 고 정재만(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의 ‘허튼춤’을 전수받은 유일한 제자 ‘이미희’가 기획한 헌정 무대였다. ‘허튼춤’은 1980년 ‘허튼소리춤’으로 초연된 뒤 발전을 거듭하며 후반부에 살풀이춤을 붙여 1993년 ‘전통명인 7인전’에서 ‘허튼살풀이춤’으로 소개되었다. 이 춤은 발디딤새가 돋보이며 벽사춤의 특징인 절제미와 정중동의 기법에 맺고 풀고 어르고 허트는 고도의 기교를 집대성, 흥과 멋을 표현한 춤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춤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고뇌와 번뇌로 만들어낸 정재만을 대표하는 춤이다. 이미희는 2011년에 정재만의 ‘허튼춤’을 사사받았다. 그녀는 이번 공연에서 스승에게 배운 춤을 기억해내고 정리하여 들어가고, 풀어내고, 추고, 올리는 굿판을 벌이듯 자신의 춤을 선보였다. 그녀는 정재만류 『입춤』, 『허튼시나위춤』, 『허튼춤』, 『허튼살풀이춤』을 직접 추며, ‘서정춤세상’ 단원들이 『사랑가』, 『태평무』, 『산조』, 『고독』에 이르는 여덟 편의 정재만류 전통춤을 선보였다.2015.05.28 15:04
지난 5월 24일 오후 6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펼쳐진 『한·김·진·이의 예』(韓·金·陳·李의 藝)는 한국 전통무의 화려한 변신, 춤 연기자들의 학구적 자세, 전향적 모습을 보여준 참신한 기획이었다. 전통무용 중 자신의 고유영역에서 벗어나 타 장르의 춤을 서로 추어 보임으로써 상대방의 춤을 이해하고, 관객들에게 현실과 역사를 무시하지 않고, 우리 춤의 고답적 매너리즘을 우회한 칭찬과 격려의 대상이 되어야할 파격적 시도였다. 열린 춤을 지향한 이번 춤은 50년대 초반부터 후반 출생의 중견 한국무용가 한혜경, 김은희, 진유림, 이정희가 의기투합한 『한·김·진·이의 예』 다섯 번째 춤판이었다. 원류와 새로운 문화원형의 창출은 늘 해석의 미묘한 차이를 낳지만 한혜경의 ‘도살풀이춤’과 ‘12체 장고춤’, 김은희의 ‘호남산조춤’과 ‘승무’, 진유림의 ‘태평무’(강선영류)와 ‘살풀이춤’, 이정희의 ‘한량무’와 ‘매헌입춤’은 무파(舞派)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가는 진전(進轉)의 몸짓이었다.춤에 대한 박식과 여유가 없으면 변주라는 ‘울타리 너머’를 생각할 수 없다. 또 다른 세상과 어울림을 가져보는 것 자체가 원형을 훼손한다는 공박으로 이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2015.05.27 07:40
평범한 가운데 비범을 좇아 목표 이룰 때까지 일에 몰입 장희정(張喜貞, HEE-JUNG JANG)은 아버지 장훈오와 어머니 유재숙 사이에서 1990년 2월 12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대곡초, 범일중, 경북예고, 단국대학교를 거쳐 단국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현대무용가다. 평범 가운데 비범을 추구하는 그녀는 감탄할 정도의 재주와 기량을 소지하고 어려움에서 쉽게 빠져나오며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당차고 늠름한 체격이지만 마음은 청초하고 가련미의 극치라 할 정도로 섬세하다. 그녀는 자기계발에 치중해야 할 시점에 있으며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녀는 노력만이 자신의 인생을 윤택하고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 줄 것으로 믿고 있으며 늘 따뜻한 남쪽나라로 질주하는 푸른 말의 꿈을 꾸고 있다. 밝고 개방적이지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유머가 있고, 목표가 관철될 때까지 한눈파는 일 없이 몰입하는 편이다. 그녀는 걸음 교정 때문에 무용학원에 다닌 뒤부터 춤이 좋아져서 지금까지 춤을 추고 있다. 그녀의 스승들은 중3때 만나서 지도해준 배능수, 유인순 선생, 대학에 진학해서는 김혜정 교수, 막바지 콩쿠르를 지도해준 이영찬 선생 등을 꼽는다.2015.05.21 09:02
긍정적인 면 찾아내 칭찬해주는 것이 더 행복하고 보람단점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앞으로 나갈 동력마저 상실2000년 새해 벽두에 간행된 ‘미국심리학자(American Psychologist)’의 특집호는 새로운 심리학의 조류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행복, 탁월성과 기능최적화(Special Issue on Happiness, Excellence, and Optimal Human Functioning)’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 특집호를 기점으로 소위 ‘긍정(肯定)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심리학의 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긍정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적 연구가 지나치게 부정적 측면에 치우쳐있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이 새로운 심리학 사조를 이끌고 있는 셀리그만(M. Selligman)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심리학은 세 가지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사명은 정신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더욱 생산적이고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명은 탁월한 재능을 밝혀내고 육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참전했던 많은 군인들이 심리적으로 큰 장애를 가지고 전역하게 되었다. 이 결과 많은 심리학자들이 정신질환을 고치는 분야에 취업하게 되었고, 심리학의 중요한 연구와 봉사 분야가 자연적으로 부정적이고 병리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되었다.2015.05.21 07:47
지난 5월 18일 오후 8시 청담동 유 씨어터에서 공연된 『2015 백민경의 춤』은 4년 전 데뷔공연에 이은 그녀의 두 번째 개인공연이다. 한국 춤의 작은 나이테를 간직한 백민경은 자기의 개성을 단체의 영광으로 돌리는 미덕을 소지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 전통춤의 기본을 충실히 하면서도 창작무용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한국무용가다. 그녀는 한체대 무용과 졸업 후 십여 년간 디딤무용단의 핵심 춤꾼으로 활동하면서 스승 국수호로부터 한국춤의 깊이감과 변주의 가능성을 배워왔으며, 단체 공연에 익숙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추방하고, 정제하고, 춤을 즐기는 자세는 관용의 법칙으로 '논어'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바람직한 전형이다. 춤꾼, 안무가, 춤 교육자로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백민경의 월요일 춤판은 열기에 휩싸인 격려와 우정의 무대로써, '즉흥무', '입춤', '신무', '쟁강춤', '살풀이 춤'(이매방류), '지전춤'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춤의 유쾌한 일면을 몸소 체험하고, 흡수하여, 맑고 청정한 기운으로 성실하게 연기해내며 지도하는 백민경의 자세는 바람직하다. 백민경은 '즉흥무', '신무', '살풀이 춤'을 독무로 보여주었다.2015.05.20 08:34
발레로 다진 점프-탄력 좋아 긴 팔에 시원한 춤사위 일품 무대에서 행복찾는 게 희망 김병조(金炳助, Kim Byung Jo)는 아버지 김영규씨와 어머니 조은희씨의 1남1녀 중 막내로 1982년 2월 1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서 태어났다. 서울 영희초, 중동중, 대진디자인고, 세종대, 세종대 대학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식들의 공부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부모님과는 달리 김병조는 자유분방하게 친구들을 사귀며 방황하는 예술가들의 초기 모습과 닮아 있었다. 멋진 신세계를 꿈꾸며 성실하게 일상을 그리는 김병조의 춤 기행은 외형의 평온함과는 달리 마음속으로는 밀림의 호랑이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기득 차 있다. 겉보기와는 다른 이타행의 화려한 심성은 자신의 꿈을 영글게 하는 원천이며, 사회와 주변을 이롭게 하는 인자(因子)들로 구성되어 있다. 배려에서 나오는 그의 양보는 늘 공자의 미덕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부모님은 병조를 불러 “넌 대학을 가려면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해야 가능성이 있겠다”라는 말을 던진다. 그 말에 병조는 동네에 있던 발레학원에 등록하고 발레 전공으로 세종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채로 국립발레단에 오디션을 봐 연수단원에 합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