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아시아 최고갑부 사비트리 진달, '철의 여왕'에서 자선활동까지 기업가 정신 발휘

공유
0

아시아 최고갑부 사비트리 진달, '철의 여왕'에서 자선활동까지 기업가 정신 발휘

인도의 사비트리 데비 진달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인도의 사비트리 데비 진달 회장.
올해 74세인 인도의 사비트리 데비 진달 회장은 철강에서 자선활동까지 흔들리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며 인도 사회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 남편이 갑작스런 헬리콥터 추락으로 사망하자 그녀는 인도의 대기업인 진달 그룹을 이어받아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녀는 진달을 전국 단위로 공장을 건설하면서 회사를 키웠다. 그리고 해외 기업을 과감히 인수하여 진달 그룹의 자산을 49조원이상으로 만들었다. 아시아 최대의 부호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사비트리 데비 진달 회장은 사업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가 돌보지 못한 부문에 자선활동을 기울이는 선행을 보여 인도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인도 아삼 주 상부의 소박한 마을 틴수키아에서 탄생한 사비트리 진달은 아시아 최고 부호로 성공하기까지, 단순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권한 부여와 리더십, 그리고 자선 활동에 이르기까지 숱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50년 3월 20일에 태어난 사비트리 데비 진달의 어린 시절은 소박함과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녀는 1970년대에 옴 프라카시 진달과 결혼하여 철강, 전력, 시멘트, 인프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진달그룹을 설립할 때만 해도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진달 그룹의 궤적은 전형적인 '누더기에서 부자가 된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사비트리 데비 진달의 남편인 옴 프라카시 진달은 1930년 하리아나의 날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2세의 어린 나이에 기업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옴 프라카시 진달은 히사르에서 작은 양동이 제조 공장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제국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1964년 진달 인도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전국에 주요 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2005년 옴 프라카시 진달은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그리고 그의 부인 사비트리 진달이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녀는 55세의 나이에 비즈니스의 복잡성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적 책임의 복잡한 세계를 헤쳐 나가야 하는 진달 그룹의 회장을 맡았다. 사비트리 진달의 성장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사명감과 고인이 된 남편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진달 그룹을 전례 없는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녀의 지휘 아래 그룹의 매출은 급증했고 칠레와 모잠비크에서 전략적 인수를 통해 전 세계로 입지를 넓혔다. 그리고 사비트리 진달은 정치에 뛰어들어 하리아나 주의 히사르 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녀는 부핀더 싱 후다 정부에서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진보적인 정책과 인도주의적 대의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펼쳤다. 재난 관리부터 도시 개발까지, 그녀는 맡은 직무를 수행했다.

그녀는 헌신적인 사회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녀는 비즈니스와 정치의 한계를 넘어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위해 헌신해 왔다. 학교, 의료기관 설립 및 기타 복지 이니셔티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감동을 주고 희망과 기회의 씨앗을 뿌렸다.

사비트리 진달은 현재 355억 달러(약 49조원)의 순자산을 보유한 아시아 최고 부호로 각인되면서 그녀는 기업가, 여성 리더, 체인지 메이커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모델이 되고 있다.

철강 산업에서 자선 활동으로 전환한 그녀의 행보는 단순히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 비전, 끈기, 공감의 혁신적 잠재력을 보여준다.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위대함은 다른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사업가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김진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