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 13:03
현대중공업은 2002년 4월 계열사로 새 출발한 삼호중공업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그해 12월 800억 원을 출자한 것을 포함해 1000억 원을 증자(增資)했다. 사명(社名)도 2003년 1월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꿨다. 계열사로서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회사 위상을 높이려는 일련의 조치였다.한라중공업은 1999년 11월 1일 삼호중공업이란 이름으로 새출발 했지만, 사실 ‘위탁경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당시 수주잔량이 불과 7척으로 2000년 상반기면 조업 물량이 바닥날 처지였다. 만일 수주가 이뤄지지 않고 경영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면,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을 중도에 포기할2022.11.20 13:00
8월 30일 현대중공업은 한라중공업이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았다. 현대중공업의 세계 제일 신용도와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라중공업을 우량기업으로 변모시킴으로써 국가와 지역경제에 기여하겠다는 뜻이었다.현대중공업은 한라중공업의 삼호조선소가 가동 중단될 경우 세계 조선시장에서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신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6000여 명의 고용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했다.한라중공업이 ‘자산과 부채를 RH중공업으로 이전하고 RH중공업은 현대중공업에 위탁경영을 시킨다’는 내용의 정리계획 변경안을 제출하자 광주지방법원은 9월 18일 이를 승인했다.현대중공업의 위탁경영만이 돌파구현대중공업이 한라중공2022.11.20 12:56
삼호중공업이 현대중공업의 위탁경영 2년 만에 흑자로 들아섰다. 1999년 위탁경영 계약 체결 당시 1000억원 적자에서 2001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800억원대의 흑자를 기록한 것. 회사 정상화를 이끌어낸 현대중공업은 2002년 4월 30일 위탁경영하던 삼호중공업의 인수를 결정했다.5월 15일까지 삼호중공업의 지분 100%(주식 2000만 주)를 1000억 원에 매입해 최종 인수하기로 한 것이었다.현대중공업그룹은 삼호중공업의 연간 대형선박 30척 건조 역량이 더해지면서 80여척의 대형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 세계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적 조선그룹으로 거듭났다.뿐만 아니라 11조 8900억원으로 자산규모가 증가해2022.10.23 06:15
현대미포조선은 1990년대 들어서 국내에서의 수리‧개조사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데 있어 한계에 봉착했다는 판단에 따라 신조사업으로의 전환과 동시에 수리선 사업의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초기에는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두 지역을 대상지로 검토했으며, 최종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근면한 국민성에 교육열이 높은 베트남을 선정했다.지리적으로도 싱가포르 못지않은 중요한 해상 요충지에 위치한 것 또한 수리선 사업의 해외진출 대상지로 베트남을 선정한 이유였다.현대미포조선은 1996년 3월 22일 베트남 국영조선공사(Vietnam Shipbuilding Industry Corporation: VINASHIN)와 합작회사인 ‘현대-비나신 조선(HYUNDAI-VINASHI2022.10.23 06:10
현대미포조선은 1996년 6월, 영업 관련 조직에 새로 기술영업부를 신설하고 신조선 수주에 역점을 두었다. 또 당시 보유하고 있던 4개의 도크 중 1~2개를 신조선 전용 도크로 이용해 2~3만t급 화물선이나 가스선, 로로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을 건조할 계획을 세웠다.현대미포조선은 세계 조선 시장의 틈새를 노려 신조사업을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와 확신이 있었다. 신조사업의 핵심인 도크는 물론 크레인도 이미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각공장만 지으면 신조사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시설 투자를 3분의 1로 줄일 수 있으니 그만큼 경쟁력이 있었다.또한 연간 400여척 정도의 수리선을 취급하며 조선 영업 정보는 물론 세계2022.10.23 06:05
1975년 1월 현대중공업에 수리조선사업부를 신설하고 2월에는 현대중공업 80%, 일본 가와사키중공업 20% 출자를 내용으로 하는 합작투자를 정식으로 체결해 사업을 구체화시켰다.계약서에는 사업 초기 일정 기간 가와사키중공업이 수리조선 물량을 확보해주는 것을 명문화했다. 합작투자 계약 후 사업은 급진전돼 3월에 미포조선소 건설공사가 시작됐고, 4월에는 정부로부터 외국인 투자 인가도 받았다. 이런 준비 끝에 4월 28일 현대미포조선소를 설립했다.현대미포조선을 설립하면서 가동 중인 신조선 조선소와 기술 인력 수주는 일본의 수리 물량을 점차 넘겨받을 수 있게 됐다.당시 아시아 지역의 국제 규모급 수리조선소는 일본 14기, 싱가포2022.10.23 06:00
1997년 8월 28일, 현대미포조선 3도크에서 선박 진수식이 열렸다. 진수 선박은 노르웨이 PGS로부터 수주한 ‘람폼 반프(Ramform Banff).’ 길이 120m, 폭 53m, 높이 16m에 2만 3000톤 규모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였다.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선박의 진수식이 주목을 끈 것은 그동안 선박 수리만 해오던 현대미포조선이 신조사업에 진출한 뒤 처음 진수한 선박이기 때문. 세계 최초로 신형 설계 특허 등록을 받은 선박이기도 했다.‘람폼 반프’호는 진수식 후 의장작업을 거쳐 12월부터 속도를 비롯해 각종 장비, 제어장치 등을 테스트하고 시운전을 마친 후 12월 27일 인도식을 가졌다. 그리고 이틀 후 29일 영2022.10.16 12:07
현대중공업이 군함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6년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제작 가능한 군용선은 200~300t급 소형선으로 코리아타코마와 대한조선공사(두 회사는 한진중공업으로 합병했고 현재는 HJ중공업)가 건조하고 있었다. 특별한 설계 및 건조기술이 요구되지 않았다.정부는 1974년부터 자주국방의 목표 아래 2000t급 구축함의 국산화를 적극 추진했다. 당시 해군과 업계는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해군은 외국의 실적선 도면을 구입해 건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자체 설계와 건조를 진행할 것인가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군 관계자들은 처음 실적선 도면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의 군함 제작업체와 접촉했다.도면비만 1300만2022.10.09 16:55
현대중공업이 세 번째로 건조한 LNG(액화천연가스) 4호선(H853)은 1·2호선과 같은 제원으로 그동안 2척의 LNG선을 건조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다양한 기술 개발과 공법 개선이 이뤄졌다. 1995년 9월 탑재한 스팀터빈은 현대중공업의 자체 개발품이었다. 스팀터빈은 대당 100억원에 달하고 선박의 심장과 같다고 할 정도의 핵심 설비이지만,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해 왔었다. 현대중공업은 1993년 기술 개발에 착수해 1995년 7월 국산화를 완료, LNG 4호선에 탑재했다.탱크 탑재방식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동안에는 부재(Lug)를 탱크 내부에 설치해야 했기 때문에 발판을 480여 개나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이를2022.10.09 16:55
우리나라에서 처음 천연가스를 사용한 것은 1986년 인도네시아로부터 5만9000㎥의 LNG(액화천연가스)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넘기면서 대체에너지 찾기에 온 세계가 심혈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정에너지라 불리는 천연가스, 즉 LNG 확보에 나섰다. 석유에 비해 매장량이 훨씬 풍부하고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환경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았다.정부의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에 따라 한국가스공사는 계속해서 LNG선을 발주했다. 선가가 높은 데다 차세대 조선기술인 LNG선 사업진출 여부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커 조선소들은 앞다퉈 경쟁에 뛰어들었다.현대2022.10.09 16:55
199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LNG(액화천연가스)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프랑스, 노르웨이, 일본 등 8개국 14개 조선소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9개 조선소 만이 실제 LNG선을 건조하고 있었다. LNG선은 건조가격이 VLCC(초대형 원유 운반선)의 세 배 정도인 2억3500만 달러에 이르는 고부가가치선일 뿐만 아니라 VLCC를 잇는 차세대 주력 선종으로 부상 중이었다.명실상부한 세계 1위 조선소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선인 LNG선 국산화를 반드시 이뤄야 했다.1991년 9월 LNG공장 준공과 함께 건조에 들어간 LNG 1호선은 국적선 1호선이자 현대중공업이 처음으로 건조하는 LNG선이었다. 12만5000㎥급 규모로 최고의 안정성을 자랑하2022.10.02 14:51
핵심은 국산화, 한국형 선박엔진을 완성하라선박용 대형엔진의 자체 제작 성공은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엔진 국산화율은 31% 정도에 머물렀다. 때문에 기술 축적의 필요성을 통감하며, 주요 부품의 국산화 필요성을 늘 체감했다.외국 제휴사들로부터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해 조립 생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고자 꾸준한 기술 개발과 협력업체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82년에는 엔진 국산화율이 51%를 넘었으며 1984년 초에는 65% 가까이 올랐다.특히 1984년 4월 선박용 크랭크샤프트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이듬해 6월에 선박용 프로펠러공장을 가동함으로써 국산화율을 75~80% 수준까2022.10.02 14:08
1977년 초 상무로 승진해 생산계획을 담당하고 있던 김형벽 전 회장은 정주영 창업자의 호출을 받고 6층 회장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다짜고짜 물었다.“이봐 김 상무, 전공이 뭐지?”김형벽 상무는 ‘내가 기계과 출신인 거 뻔히 아시면서 왜 물으실까?’ 생각하며 대답했다.“기계공학과 나왔습니다.”“아 그래? 기계공학과 나왔으면 기계 일을 해야지 왜 조선 일을 해?”나무라듯이 말하는 정주영 창업자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영문도 모른채 뭐라고 대꾸를 하려는데 질문이 이어졌다.“이봐! 선박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야?”김형벽 상무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회장님, 엔진입니다. 사람의2022.09.25 14:04
선주가 포기한 VLCC 2척을 계속 건조하라처음으로 겪은 선주의 횡포에 현대중공업은 국제재판소 소송으로 대응했다.세계 해운업계에 리바노스가 현대중공업에 빚이 있음을 알리고 다른 선주들도 이런 횡포를 부리지 말라는 경고 차원이었다. 설사 패소해도 큰 손해가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2000만 달러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비슷한 배를 1척 만들려면 4000만 달러가 들기 때문이었다.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통 큰 결단으로 소송은 마무리됐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약금을 돌려주는 대신 리바노스로부터 새로 배 한 척을 발주받고, 갈곳 없는 애틀랜틱 배러니스는 현대중공업이 인수하는 것으로 매듭짓고 소송을 취하했다.리바노스의 인2022.09.25 13:48
1976년 7월 30일, ‘코리아 선’호가 울산항을 떠났다. 쿠웨이트를 향해 시험운항 길에 오른 것이었다. 까다로운 말라카 해협도 무사히 지나 순조롭게 쿠웨이트 항구에 접안했다. 우리나라 정유공장에 필요한 원유를 수송하러 간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이었다. 항구로 배를 접안시키기 위해 갑판으로 올라온 현지 도선사들은 사뭇 신기한 표정으로 배를 살피며 이승우 선장에게 물었다.“처녀항해 같은데… 어디서 만든 배냐?”“코리아, 우리가 만들었다.”“그럼 선원도 한국인이란 말이냐?”“얼굴 보면 모르나, 모두 내가 훈련시킨 선원들이다.”“행선지는 어딘데?”“코리아, 울산이다.”도선사들은 정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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