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1 13:11
바야흐로 본격적인 여름이다. 일찍 찾아든 무더위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날이 갈수록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꽃들이 철을 잊지 않고 피어난다는 점이다.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서면 담장을 타고 오른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가로변의 화단엔 왕원추리꽃·비비추·접시꽃도 피어나 나를 반긴다. 태양의 열기에 지레 겁을 먹고 아침부터 에어컨을 틀어대는 사람들과 달리 식물들은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저버리지 않고 때맞춰 꽃을 피운다. 올여름이 아무리 뜨거워도 남은 생애 중에선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란 말처럼 더위는 갈수록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2026.06.24 14:58
오랜만에 천변을 걸었다. 너무 일찍 찾아든 무더위 때문에 천변 걷기는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 뜨기 전의 희붐한 새벽이나 한밤중에 가끔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달리기도 하지만 운동이 주목적이다 보니 그저 스쳐 지날 뿐이라서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풍경에 눈길을 주고 감상하는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날마다 오가는 길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 길가에 무슨 꽃이 피어 있는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오래도록 꽃에 매료되어 지내다 보니 어딜 가나 내 시선은 꽃을 향해 있다. 산길이나 들길, 천변을 가리지 않고 걸으면서 꽃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한다. 눈에 띄는 꽃들을 보고 사진을 찍고 관찰하며 걷다 보면 나의 산책은 늘2026.06.17 14:13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오세영의 시 ‘6월’ 일부 자연은 향기로 시절을 일러준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산을 내려온 알싸한 밤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유월은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자 밤꽃 향기의 계절이다. 시인의 말처럼 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는 그리움을 자아낸다. 특히 밤꽃 향기는 한 번 맡으면 머리에 어질병이 일 만큼 짙고 강해 향기라는 말보다는 냄새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조선 시대 유학자 서거정이 ‘동국여지승람’에서 6월 전국의2026.06.10 13:32
대마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산 금정산을 올랐다. 늘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기도 하지만 금정산을 오른 것은 전혀 뜻밖의 산행이었다. 서울로 가는 KTX 열차가 매진되어 지인의 집에서 1박을 했는데 기왕 부산에 왔으니 금정산이나 함께 가자고 했다. 지인의 청이 아니었다 해도 금정산은 한 번은 올라보고 싶었던 산이어서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금정산은 서울의 북한산처럼 부산을 대표하는 산이다. 부산의 금정구에서 북구, 경남 양산시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있는 금정산은 한국에서 가장 긴 산성인 금정산성과 영남 3대 사찰로 꼽히는 범어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워낙 넓게 자리하고 있는 산이라서 부산 도심은 물론이고 외2026.06.03 16:22
대마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성 아우구스투스는 "이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한 페이지만 계속 보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바닷길로 49.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까운 외국이다. 그야말로 ‘내 땅인 듯, 내 땅 아닌, 내 땅 같은’ 일본 땅이다. 일본의 다른 가장 가까운 섬과의 거리가 73km, 후쿠오카까지는 138km 떨어져 있는 만큼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에 훨씬 가까운 섬이다. 그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예로부터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깊었다. 고려 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 콩 등을 답례로 받아 갔으며 조선에 일러서는 대마도를 근거지로 왜구들이 조선의 해안에 출몰하여 그2026.05.27 13:17
어느덧 싱그럽던 신록은 짙어질 대로 짙어져 초록 그늘이 그리운 계절이 된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숲을 보면 무궁무진한 자연의 힘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꽃은 야위고 초록은 살이 찌는 시절이지만 그렇다고 숲에서 모든 꽃이 자취를 감춘 건 아니다. 초록이 대세인 요즘 숲에서 꽃을 보면 더 반갑다. 특히 요즘 산길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함박꽃나무의 흰 꽃을 보면 그 맑고 밝은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곤 한다. 흔히 산목련이라고 부르는 함박꽃나무는 북한에서는 목란(木蘭)이라고 하며 나라꽃으로 지정되어 있다. 목련과 한 집안이면서도 잎이 핀 뒤에 뒤늦게 꽃을 피우는 함박꽃나무는 오월의 숲에서 만날 수 있는2026.05.20 13:39
성큼 다가선 여름, 석모도를 다녀왔다. 내 기억 속의 석모도는 이름보다 먼저 ‘풍경’으로 기억되는 섬이다. 인천 강화군 삼산면에 속하는 이 섬은 강화도 서쪽 끝에 자리해 과거에는 배를 타야 닿을 수 있었지만, 2017년 석모대교가 놓이면서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는 ‘섬 속의 섬’이 되었다. 한국의 ‘3대 낙조’와 ‘3대 관음 성지’ 중 하나인 석모도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명소였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데다 강화도 외포항에서 배로 5∼10분이면 닿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상 조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낭만의 섬 여행지였다. 내게도 배를 타고 가며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2026.05.13 13:52
소공원 못가에 노랑꽃창포가 피었다. 노랑꽃창포는 이름과는 달리 창포와 무관한 붓꽃과에 속하는 유럽과 중동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진한 자색 꽃이 피는 자생종 꽃창포나 붓꽃과 달리 선명한 노란 꽃이 매혹적이다. 봄의 끝자락인 5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노랑꽃창포가 만개한 걸 보니 봄이 이울고 여름이 시작된 듯하다. 굳이 노랑꽃창포가 아니더라도 여름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보라색 등꽃이 지기도 전에 산자락의 아까시나무 숲에선 벌써 꽃들이 만발해 아침저녁으로 달콤한 향기를 마을로 마구마구 내려보낸다. 둘레길을 걷다 벌들의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하얀 찔레꽃이 눈을 찔러 온다. 꽃들이 진 자리를 재빠르게 메우면2026.05.06 13:38
모처럼 설악산으로 숲 트레킹을 다녀왔다. 누군가는 짧은 여행을 산책이라 하고 긴 산책을 여행이라고 했지만, 여행이란 잠시나마 삶의 자장을 벗어나는 일탈 행위다. 기왕에 길을 떠날 거라면 되도록 멀리 가는 게 좋다. 좀 더 먼 길을 떠나야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설악산행 버스에 오른 것은 그런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여름 들머리에 선 듯한 한낮의 뜨거운 태양과 속절없이 지는 봄꽃들의 아쉬움을 설악에서 달래보고 싶어서였다. 봄이 늦은 설악에 가면 봄을 붙들고 피어 있는 꽃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이른 아침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 한계령을 넘어 오색에서2026.04.29 14:22
불암산으로 철쭉꽃 보러 가던 길에 작은 암자 모퉁이에 황홀할 만큼 눈부시게 핀 등꽃을 보았다. 고사목 등걸을 타고 오른 등나무가 사방으로 덩굴을 뻗어 연보라색 꽃송이를 달고 선 모습이 마치 커다란 꽃다발처럼 보였다. 올 초 세상을 떠난 ‘한국의 장 주네’(프랑스의 부랑아 출신 작가). 지게꾼 시인으로 불린 김신용 시인의 유고 시집의 ‘등꽃 아래’란 시를 떠올린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 등꽃, 환하다.// 제 그늘 너무 짙어 등 하나 켜 놓은 것 같다.// 빈자(貧者)의 일등(一燈)도 저와 같을까// 대낮에도 밝게 켜 놓은// 저 등, 아래 서면// 그래, 누군가 발 헛디딜 이 없겠다." ('등꽃 아래' 전문) 시인의 시가2026.04.22 20:21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한낮의 햇살이 제법 뜨겁다. 연신 피어나는 꽃들에 눈길을 주는 사이 공터에도 풀들이 무성해져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그 풀밭에 별들이 내려앉은 듯 생명력 강한 노란 민들레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일찍 꽃을 피운 녀석들은 벌써 둥근 씨앗 뭉치를 단 꽃대를 높이 밀어 올리고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꽃이 진 벚나무에도 잎이 제법 너풀거릴 정도로 커졌고, 연록의 새잎을 내어 단 느티나무도 한껏 생기 찬 모습이다. 요즘은 눈길 닿는 곳마다 피어난 형형색색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도 대단하지만, 새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잎을 키우며 연두에서 초록으로 점점 짙어지는 신록의2026.04.15 13:42
봄이 무르익고 있다.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십 리씩 깊어지는 봄은 이제 절정에 이른 듯하다. 산빛은 어느새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짙어지며 겨울빛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제 숲은 초록의 기운이 꽃의 붉은 기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속에 벼르던 진달래능선을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북한산 자락에 깃들어 살면서도 진달래능선의 진달래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진달래능선을 따라 산행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정작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봄엔 기회가 없었다. 북한산은 삼각산·삼봉산 같은 여러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봄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빛나는 산’이라는 뜻의 화산(華山2026.04.08 13:16
온통 벚꽃 천지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주말 오후 벚꽃 찬가와도 같은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꽃그늘마저 환한 우이천의 벚꽃나무 아래를 걸었다. 36만 그루의 진해 벚꽃 터널의 장관엔 못 미친다 해도 우이천의 벚꽃도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엔 부족함이 없을 만큼 눈부시고 화사하다. 은빛 햇살 아래 뭉게뭉게 피어난 벚꽃은 세상을 더 환하게 밝혀주고, 하늘을 더 푸르게 만들어 준다. 벚꽃 나무 아래에 서면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하고, 두께가 느껴지지 않는 흰 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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