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1 13:20
살갗을 에는 바람이 맵차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속담이 헛말이 아니듯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한파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오전 내내 집안에 들어앉아 있다가 콧바람이라도 쐴 생각으로 볕 좋은 오후에 천변 산책에 나섰다. 솜털 외투로 꽁꽁 싸맨 백목련 꽃눈이나 담장의 개나리 가지를 살펴봐도 봄의 기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볕바른 양지쪽 마른 풀 사이로 겨울을 잘 견딘 로제트 식물들이 푸른 빛을 찾아가고, 흐르는 물속에 초록 기운을 머금고 있는 한 뼘쯤 자라난 물풀들이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방류구의2026.02.04 13:38
아침 산책길에 흰 눈에 반쯤 덮인 남천의 빨간 열매가 눈을 찔러왔다. 남아시아와 중국이 원산지인 남천은 상록관목이다. 한겨울에도 선홍색의 열매를 달고 있어 ‘겨울 정원의 보석’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화재나 액운을 막아준다고 여겨 집 정원이나 사찰 주변에 많이 심어온 나무다. 입춘을 코앞에 두고 밤새 눈이 내렸다. 눈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가 우연히 남천 열매를 보았으니 새봄엔 왠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사람들은 건강과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기원하는 입춘첩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다. 입춘첩을 붙이는 것은 우리 고2026.01.28 13:36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듯하다. 지구 온난화로 한겨울에도 좀처럼 빙점 아래로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겨울에 익숙해졌던 몸이 혹한의 추위 앞에서 잔뜩 움츠러들었다. 동장군의 위세가 드세긴 해도 마냥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바람도 쐴 겸 포천의 화적연을 찾았다. 국도를 벗어나 화적연을 찾아가는 도로는 반쯤은 채 녹지 않은 눈에 덮여 있었다. 화적연(禾積淵)은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휘돌아 나가며 연못처럼 보이는 곳에 볏단을 쌓아놓은 노적가리 형상의 바위가 솟아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볏가리소’다. 피서객과 캠핑족들이 붐비는 여름과 달리 강과 어우러져 고고한 풍광을 간직한 눈 덮인2026.01.21 13:39
나이 한 살 보탠 티를 내는 것일까. 달력 한 장 바꾸어 걸었을 뿐인데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꾸 삐걱거린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며 몸을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눈이 내렸는지 온 동네가 눈에 덮여 흰빛으로 가득하다. 동네 골목길을 돌아 둘레길로 이어지는 숲 들머리에 이르니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발자국을 따라 둘레길로 들어서니 잎을 떨구어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흰 눈꽃이 피어서 허룩하던 숲에 오히려 생기가 도는 듯하다. 밤새 아우성치던 골바람도, 숲속 빈터의 낙엽들도 흰 눈에 덮여2026.01.14 13:10
해가 바뀌고 첫 산행이다, 가볍게 시작하려고 택한 트레킹 장소가 안산 자락길이다. 출발지인 독립문역에 내리니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맵차다. 낮은 기온 덕분에 공기는 맑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활엽수들이 잎을 모두 떨군 실가지로 얼음장 같은 파란 겨울 하늘을 부지런히 비질하고, 덤불 사이로 몇 마리의 참새들이 발소리에 놀라 쳐다본다.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은 7㎞ 길이의 전국 최초 순환형 무장애 탐방로로 장애인·노약자·어린이 등 보행 약자는 물론 휠체어·유아차도 쉽게 숲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한강·인왕산·북한산·청와대 등 다양한 조망도 즐길 수 있다. 안산(鞍2026.01.07 14:12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선물 같은 새해를 맞아 우리는 저마다 소망을 가슴에 품는다. “새해 작은 꿈 하나 있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나서는 일이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지/ 별들은 언제 잠들고 일어나는지/ 그 짙은 어둠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누가 훔쳐 갔는지/ 꽃씨들은 눈 속에 살아 있기는 한지/ 산그늘은 왜 마을을 들러 가는지/ 가난은 어째서 평화로운지/ 잠시 마당을 서성이는 일이다// 오늘 밤은 별이 참 많네,/ 들어와 책상에 앉는 일이다” –김용만의 시 ‘꿈’ 일부신문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던 것은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서 가족이나 친지, 지인들로부터 수많은2025.12.17 13:19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는 저지대 수평 산책로다. 북한산 자락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은 전체 길이가 71.5㎞에 이르지만 21개의 다양한 코스가 있어 누구나 쉽게 자연과 벗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숲 모임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여서 송년 모임을 겸하다 보니 걷기에도 편하고 시간도 여유로운 둘레길을 택한 것이었다. 코스도 길지 않고 걷는 길도 편안하여 여느 때와 달리 시간도, 마음도 여유로웠다. 12월의 싸늘한 냉기는 걸음을 재촉하기에 좋은 조건이었지만 우리는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도봉산역 앞에2025.12.03 14:34
마침내 12월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야말로 ‘마침내’란 부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다. ‘마침내’란 말 속엔 지난 열한 달의 시간을 잘 견디고 통과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12월 달력 한 장의 무게가 지난 열한 달의 무게와 맞먹는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속절없이 또 한 해가 덧없이 지나간다는 생각에 공연히 안절부절못하고 허투루 살아온 지난 삶을 반성하기도 하고, 때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이벤트가 송년회다. 직장을 비롯해 동창이나 친구 모임, 각종 동호회까지 송년회 모임도 다양하고 모임마다 송년회의 풍경도 제각각이고 천차만별2025.11.26 13:59
지난주엔 시제(時祭)를 지내느라 고향 선산을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음력 시월로 접어들며 시제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제는 시향제(時享祭)의 준말로, 해마다 지내는 5대조 이상의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다. 조상의 묘를 찾아 제를 올리는 일은 매우 경건한 일이나 산을 오르내리며 일일이 제수를 차리고 준비하다 보면 번거롭고 힘든 것도 사실이다. 깔끔하게 단장된 봉분과 달리 산을 오르는 길은 온통 낙엽으로 덮여 있다. 떨어져 쌓인 낙엽을 보면 때가 되면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까. 푹푹 발이 빠지는 낙엽을 밟으며 산을 오르다 보면 허무함과 함께 인생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여름내 초록2025.11.19 14:07
가을 끝자락을 밟아 평화누리길 8코스를 걸었다.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승이 노후를 보냈다는 반구정(伴鷗亭)에서 시작해 임진각까지 약 13㎞의 들길이다. 반구정은 갈매기와 벗하는 정자란 의미인데 반구정에 올랐을 때 내 눈길을 끈 것은 V자 형태로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하늘을 배경으로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나는 모습이 신기해 자꾸만 고개가 젖혀진다. 찬 바람에 잎을 떨군 나무처럼 추수가 끝난 들판은 텅 비어 있다. 휑한 들판을 따라 걷자니 나도 모르게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백창우 시인이 노랫말을 짓고 가수 임희숙이 부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였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2025.11.12 13:05
바야흐로 단풍이 절정이다. 일찍이 카뮈는 “낙엽이 꽃이라면,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산행’이란 시에서 봄꽃에 빗대어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다’고 단풍을 예찬하기도 했다. 꽃과 단풍의 공통점은 매혹적인 아름다움의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곱게 물든 단풍은 곧 떨어져서 낙엽이 되고 결국은 썩어서 거름이 된다. 단풍도 꽃과 같아서 때를 놓치면 다시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때를 잘 맞춰야 단풍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가을 왕릉 숲길이 개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때를 놓치기 전에 마음속에 점찍어 두었던 광릉 복자기나무 숲길을2025.11.05 13:54
마침내 11월이다. 11이란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차 레일을 닮아서일까, 11월은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달이다. 아직 달력 한 장이 더 남아있기는 하지만 한 해의 막바지에 가까워진 마음의 조급함과 헛되이 흘려버린 지난 시간에 대한 미련이 등을 떠미는 까닭이다. 단풍은 하루 최저 기온이 5℃ 아래로 내려가 쌀쌀해지면서 들기 시작한다. 쉽게 말해 나뭇잎이 광합성 활동을 멈추면서 단풍이 드는 것이다. 올해는 여름 늦게까지 더위가 극성을 부리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바람에 고운 단풍을 보기가 쉽지 않다. 길가의 가로수들도 시퍼런 채로 잎이 마르고 낙엽 되어 도로 위에 뒹구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내가2025.10.30 13:34
사릉(思陵)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얼마 전 국가유산청에서 오는 11월 30일까지 조선왕릉 숲길 9개소를 개방한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구리 동구릉과 남양주 광릉, 서울 태릉과 강릉 등 아름답고 걷기 좋은 9곳의 왕릉 숲길을 개방한다는 뉴스였다. 단풍 든 왕릉 숲길을 걸으며 조선왕릉의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치유와 휴식도 누리라는 취지란다. 조선시대 왕릉 주변은 금표(禁標) 지역으로 지정되어 일반 백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좋은 경관과 함께 울창한 수목들이 잘 보존돼 있다. 국가유산청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나는 왕릉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왕릉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와 함께 왕릉 숲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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